[충청매일] 특히 충주목사 민강은 충주관아에 할당된 전선 다섯 척의 건조를 최풍원에게 떠넘기고 그 대가로 가흥창의 세곡 운송권을 약속했었다. 그래서 세곡을 한양으로 운송하기 위해 최풍원은 무리하게 사선 스무 척을 건조했던 것이었다. 최풍원은 충주관아에 바치는 공납물산과 세곡 운송료로 전선과 사선 건조 비용을 갚아나갈 계산이었다. 그러나 최풍원이 한양의 경창으로 세곡을 운반한 것은 두 해 봄 뿐이었다. 두 번의 선가로는 사선 건조비는 커녕 전선 다섯 척의 비용을 메우기에도 모자라는 액수였다. 그러니 사선 스무 척의 제작비용은 고스란히 빚으로 남아 점점 불어나고 있었다. 최풍원이 다급한 마음에 충주관아로 민강 목사를 찾아갔었다.

“그런 일은 맡은 부서에서 아랫것들이 처결하는 것이라 난 모르는 일이오! 그리고 난 이번에 승차해서 대궐로 들어가기 때문에 정리해야 할 일이 많아 바쁘니 호방에게 가 알아보시오!”

결국, 민강 목사가 한양으로 떠나고 새로 온 신임 목사는 가흥창의 세곡 운송권을 자신과 밀약을 한 경강상인에게 넘기고 말았다. 그리고 이들이 빌려달라는 돈은 빌려가는 돈이 아니라 거저 달라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그들은 빌려간 돈을 갚는 대신 관아의 이권을 자신들의 입맛에 맞게 나눠주는 것으로 대신했다. 그러니 관아와 결탁한 일을 지속하기 위해서는 신임 관리가 바뀔 때마다 거액의 약채를 그들 손에 쥐어주어야 했다. 관아에서 한 해 동안 움직이는 물산들은 막대한 양이었다. 따라서 신임 부사나 목사가 바뀔 때마다 이권을 따내기 위해 장사꾼들은 한양의 재상까지 등에 업고와 치열한 경쟁을 벌였다. 관아 수령은 앉아서도 돈이 들어오는 자리였다. 부사나 목사들이 지방에서 한양으로 올라갈 때는 돈을 얼나나 긁어모았는지 마소나 경강선까지 이용해 옮겨갔다. 이런 지경이니 한양의 권세가 집안에는 빚을 지더라도 관직을 하나 얻어 돈벌이를 하려는 사람들로 문턱이 닳았다. 이들 권세가들은 밀물처럼 들어오는 뇌물로 한양에만 십여 채의 집을 가지고 있는 것은 보통이었고, 도성 밖에서도 수십만 평의 농토를 장만하여 소작으로 거둬들이는 소작료만 수천 섬에 달했다.

“최 행수, 정말 안 되겠소?”

조관재가 또다시 협박하듯 물었다.

“사또, 관아에 바친 공물 대금도 이 년이 넘도록 해결되지 않고 있읍니다요.”

최풍원이 조 부사의 눈치를 살피며 어떻게든 지금의 위기에서 벗어나기 위해 말꼬리를 돌렸다.

“그건 전임 부사와의 일이니 그 일을 잘 아는 호방과 할 일이고, 나는 최 행수와 앞일만 논하면 되지 않겠소?”

“앞일이라니요?”

“최 행수가 정히 내 청을 들어줄 수 없다면, 나도 관아의 공물권과 관내 세곡 수거권을 달리 알아보겠소!”

조 부사는 이제 노골적으로 자기의 속내를 내보이고 있었다. 여차하면 지금까지 북진여각에서 독차지해오고 있던 청풍관아의 세곡에 관련된 일을 다른 사람에게 돌리겠다는 협박이었다. 청풍관아에서 충주 가흥창으로 옮겨주고 받는 일년 선가는 조 부사가 요구하는 이만 냥에도 훨씬 미치지 못하는 금액이었다 그러나 조 부사의 청을 거절하면 그로 인해 파생되는 다른 문제가 더 컸다. 우선 이현로 부사 때부터 청풍관아에 수급하고 받지 못한 공물대금을 포기해야 했고, 더 큰 문제는 조 부사와 한 통속인 충주관아의 공물권까지도 단념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충주관아와의 유착 관계가 끊어진다는 것은 북진여각의 파산을 의미했다.

“사또, 제가 돌아가 객주들과 상론해서 돈을 마련해보겠습니다요.”

최풍원이 울며 겨자 먹기로 약속을 하고 그 자리를 빠져나와 도중회의를 소집했다. 그러나 모인 객주들은 절반에도 미치지 못했다.

“지금 신임 부사가 돈 이만 냥을 요구하며, 관아 일을 미끼로 협박을 하고 있소이다. 그래서 객주들 의견을 들어보고자 모이라 한 것이오.”

최풍원이가 먼저 운을 뗐다.

“아니 그네들은 눈이 마빡에 붙었나, 우리네 살림 꼬라지를 보고나 있는 것이여!”

“이번 신임 부사는 얼마를 내놓으라고 하는 거요, 최 행수?”

“이만 냥이요.”

“이만 냥이요?”

“백성들은 죽는 줄도 모르고, 그네들 요구하는 돈은 어째 자꾸 뛰어오르기만 한답니까?”

“우리한테 맡겨놓은 돈 찾아가듯 염치도 없는 양반네들이여.”

“양반이 무슨 염치가 있어. 몰염치가 염치지.”

“그런 쓸다리 읎는 소리들 그만두고 해결책을 찾아야지.”

저마다 한마디씩들 내뱉는 객주들 틈에서 북진 송방 때부터 최풍원과 고락을 같이해온 영춘객주 심봉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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