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청매일] 불행은 짝을 지어 찾아오기 마련이었다. 아니 불행이라고 하기 보다는 이미 예견된 일이었다. 장사꾼들에게 있어 빚도 재산이었다. 그리고 빚을 갚는 것은 능력이었다. 그 능력은 사람들 사이에서 발휘되는 것이었다. ‘천석지기는 천 가지 걱정, 만석지기는 만가지 걱정’이라더니 재산도 규모에 따라 각기 다른 얼굴을 하고 있었다. 처음 장사를 시작했을 때는 내 한 몸만 건사하면 되었지만, 혼자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장사 규모가 자꾸 커지면서부터는 다른 사람의 손을 빌려야 했다. 그러다보니 객주들만 수십 명으로 늘어났고, 그 밑에 딸려있는 보부상들까지 치면 수백이 넘는 대식구로 불어났다. 이 대식구들을 건사하려면 상권을 키워야 했다. 상권을 키우려면 정상적인 상거래만으로는 한계가 있었다. 그것을 타개하려고 관아와 유착을 했다. 그러나 관아와의 유착은 또 다른 문제점을 파생시켰다. 그들과의 유착이 깊어질수록 북진여각의 외형은 커졌지만 내실은 점점 더 힘들어져 갔다. 그렇다고 그들과의 고리를 끊어버릴 수도 없었다. 하기야 그것은 최풍원이 끊을 수 있는 문제가 아니었다. 유착의 고리는 관아의 벼슬아치들이 끊어야 끊어지는 것이었다. 벼슬아치들은 조금이라도 더 단물을 빼먹을 수 있다면 절대로 그 끈을 놓지 않았다.

청풍부사 조관재는 부임해 오자마자 최풍원이를 관아로 불러 노골적으로 손을 벌렸다.

“최 행수, 이만 냥만 내게 꿔주시오.”

“사또, 시골 장사꾼한테 그런 큰돈이 어디 있답니까?”

“왜 그러시오, 내 이미 전임 부사한테 다 들었소.”

“이런 시골 바닥에 그만한 돈은 힘듭니다!”

“내 부탁을 거절하는 겐가?”

조 부사의 목소리가 까칠하게 찢어졌다.

“그런 것이 아니오라…….”

현재 북진여각의 최풍원에게는 정말로 그만한 돈이 없었다. 한창 거래가 활황일 때라면 그만한 액수는 그리 어렵지 않게 변통이라도 할 수 있었겠지만 지금은 상황이 달랐다. 사선 건조와 한양의 상전을 내는 데 들어간 막대한 돈도 빚으로 남아 있었다. 거기에다 장사까지 되지 않아 늘어만 가는 이자도 갚지 못해 빚은 눈덩이처럼 불어나고 있었다. 거기에다 북진여각에서 수집하여 일괄 매매해서 분배하던 이득이 급속하게 줄어들자 뒷거래를 하는 객주들도 늘어났다. 그렇다고 신임 부사 조관재의 부탁을 무조건 거부할 수도 없는 처지였다. 그의 부탁을 거절했다가는 닥쳐올 앞날이 걱정이었다. 그것은 최풍원 개인만의 문제가 아니라 북진여각과 도중회의 모든 객주들과 거기에 딸린 가솔들의 생존과도 직접적 관련이 있는 문제였다. 조 부사는 조 부사대로 그 돈을 당장 구하지 않으면 안 될 급박한 이유가 있었다. 한양에서 벼슬자리를 사서 내려오며 모자라는 돈을 경주인에게 빌려 충당하고 내려왔던 터였다. 약속한 시일이 넘어가자 경주인은 시시각각으로 조 부사를 압박했다. 중앙과 지방의 연락책에 불과하던 경주인은 본래의 업무에서 벗어나 이제는 매관매직을 알선하는 일까지 했다. 그들은 한양의 대감들과 벼슬을 사려는 양반과 부자들 사이에서 관직을 알선해주고 돈까지 빌려주었다. 그리고는 신임 관리들이 부임을 한 이후 원전에 대한 수수료까지 합쳐 빌려주었던 돈을 받아냈다. 만약 돈을 갚지 않으면 이들은 다른 사람에게 관직을 되팔기까지 했다. 그러니 새로 부임해오는 관리들은 백성들의 살림살이를 돌보기보다는 그 돈을 갚고 개인적인 치부까지 하느라 갖은 명목으로 세금을 뜯어내는 데 혈안이 되었다. 조 부사 역시 경주인의 소개로 한양의 세도가 대감과 연이 닿아 경복궁 중건에 필요한 기부금 명목으로 일만 냥을 내고 청풍부사 자리를 산 것이었다.

“청풍 인근에서 가장 부자라는 최 행수가 그만한 돈이 없다면 누가 믿겠소. 나는 그대가 날 믿지 못한다는 얘기로밖에 들리지 않소!”

“사또, 지금 제 사정이 매우 급박합니다요.”

“듣기 싫소! 전임 부사한테까지도 해줬던 것을 왜 내게만 못 해준다는 말이오? 그게 나를 업신여기는 것이 아니라면 그게 뭐요!”

조관재 부사는 아예 최풍원을 협박하고 있었다.

최풍원의 사정은 아랑곳하지 않고 조 부사는 막무가내로 자신의 욕심만 채우려고 했다. 최풍원은 답답하기 그지없었다. 이미 북진여각은 빚더미에 허덕이고 있었다. 관리들은 돈을 빌려갈 때는 온갖 약속을 해 놓고, 자기들 용건만 끝나면 모른 척 하는 것이 다반사였다. 전임 청풍부사 이현로도, 충주목사 민강도 같은 부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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