① 빚이 눈덩이처럼 불어나다

 

 

벌써 수년째 짝을 맞추며 찾아온 흉년과 한양에서 대량으로 생산되는 공방 물건은 북진여각에도 막대한 타격을 주고 있었다.

있는 것과 없는 것을 바꾸며 유무상통하는 것이 장사였다.

그런데 북진의 고을민들에게는 없는 것이 전부였다. 당장 먹을거리가 없는 데 장에 가지고 나올 물건이 있을 리 없었다. 설령 내놓을 물건이 있다 해도 먼 길을 걸어 북진장까지 올 필요도 없었다. 경강상인들이 마을마다 물건을 풀어놓은 잡화점에 가면 언제든 필요로 하는 물건을 살 수가 있었다. 장마당에는 이미 장꾼들의 발길이 끊어진 지 오래였다.

닷새마다 열리는 향시에도 평생을 떠도는 것이 몸에 박힌 몇몇 장사꾼들만 찾아와 겨우 명맥을 유지했다. 객주들이나 산지사방을 떠도는 부보상들도 장사가 되지 않는 것은 마찬가지였다. 그러니 북진여각의 장사도 원활하게 이루어질 리 없었다. 북진여각의 거래물량도 눈에 띌 정도로 곤두박질을 치고 있었다.

“이전부터 우리 고을에서는 큰 부자가 날 수 없디야.”

“팔영루 호랑이가 똥을 바깥쪽으로 싸기 때문에 재물이 다른 동네로 몽땅 새나간다는구먼.”

“저눔은 알지도 못하는 게 주둥이질만 그럴싸하구먼. 더러운 똥을 바깥으로 싸면 좋지, 뭐가 나쁘다는 거여?”

“뭣도 모르는 놈! 똥이면 다 같은 똥이냐? 호랑이 똥은 황금이여. 황금을 문 밖으로 싸는 데 그게 좋은 일이냐?”

“똥 같은 소리 하고 있네. 그게 아니라 청풍 지형이 배 모양이라 물건을 많이 실으면 가라앉아 부자가 안 생긴댜.”

사람들은 북진여각 최풍원 대행수의 운세가 다했다고 저마다 떠들어댔다.

청풍 인근에는 예로부터 전해지는 이야기가 있었다.

청풍의 관문인 팔영루 천정에는 황소보다도 큰 호랑이가 그려져 있었다. 청풍을 지키는 수호신이었다. 수호신이라면 밖에서 들어오는 온갖 악귀를 막기 위해 부리부리한 눈은 바깥을 응시하고 있어야 했다.

그런데 팔영루 천정에 그려진 호랑이는 무슨 이유인지는 몰라도 반대로 읍성 안을 바라보고 있었다. 머리는 안쪽으로 꼬리는 바깥쪽을 향해 앉아있는 형상이었다.

그래서 사람들은 호랑이가 읍성 안쪽으로 똥을 싸야 재물이 모이는 데 바깥에다 똥을 싸기 때문에 재물이 빠져나간다고들 우스갯소리를 했다.

그러나 풍수쟁이들은 청풍의 지형이 배 형상을 하고 있어 재물이 가득 차면 배가 떠내려가게 되어 청풍은 물론 인근에서는 큰 부자가 생기기 어렵다고 했다. 그만큼 옛날부터 이 지역은 산지가 많아 전답이 협소했기 때문에 큰 부자가 생기기 어렵다는 것을 반증하는 것이기도 했다.

나무도 늙으면 새가 떠나고 꽃도 시들면 벌나비도 찾지 않는 법이었다. 그것이 순리고 세상인심이었다.

북진여각도 상권이 약해지고 거래되는 물산량이 급격하게 줄어들자 도중회의 결속력도 동시에 약해졌다. 동시에 객주들과 보부상들의 발걸음도 눈에 띄게 뜸해졌다.

“모든 객주들은 수거한 물산을 일단 본전에 입고한 뒤 여각에서 일괄하여 매매할 수 있도록 하시오!”

북진도중회 소속의 객주들과 보부상들이 규약을 어기고 암암리에 개인적으로 물산들을 거래하는 것을 알고 이를 막고자 최풍원 대행수가 단단히 일렀지만 소용이 없었다.

워낙에 거래되는 물량이 형편도 없었거니와 빚더미에 시달리며 이미 지기 시작한 해를 잡으려는 바보는 없었다. 의리만 믿고 하던 장사는 이제 옛말이었다. 그것은 최풍원의 시대에서나 가능한 이야기였다.

요즘 장사는 의리가 아니라 남보다 먼저 시류를 읽고 그것과 영합하지 않으면 자멸이었다. 벌써 한참 전부터 도중회 객주들이 하나둘 물산을 북진여각에 입고시키지 않은 채 사사로이 거래를 하고 있다는 것을 최풍원도 직감으로 느끼고 있었다.

세상에 모든 일은 사람이 중심이었다. 모든 일은 사람 사이에서 일어났다. 무슨 일이든 사람이 중심이 되지 않으면 그 일은 성사될 수 없었다. 그런데 마을이고 장마당이고 북진여각이고 사람들이 점점 줄어들고 있었다. 발걸음이 뜸해지는 것은 몰락을 의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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