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가

[충청매일] 벽에 걸린 시계를 바라본다. 시계 안의 세상은 어떠할지를 생각해 보았다. 매일 그 자리 그 모습 그대로다. 초침 분침 시침만 돌고 있다. 초침은 빠르게 지나온 과거고, 분침은 느리게 흐르는 현재이고, 시침은 보이지 않는 미래다.

매일 같은 속도 같은 방향으로 돌고 있다. 나와 알게 된 지 60년이 지났지만 한결같다. 간혹 아플 때나 잠시 느려지거나 멈추어 선다. 혼자 외롭게 높은 건물 벅이나 집안 이곳저곳 벅에 매달려 생활한다. 위험하게 보이지만 열심히 자기 할일을 묵묵히 하고 있다. 그래서인지 모든 사람이 우러러보고 있다.

우리 일상은 시계와 연관되어 있다. 하루의 일과표가 여기에 맞춰 짜이고 행동한다. 기상 시간, 식사 시간, 등하교 시간, 귀가 시간, 취침 시간, 시간표에 맞추어 하루를 살고 있다.

시간에 구속당하며 살고 있다. 태어나는 시간, 결혼하는 날짜와 시간, 그것에 따라 인생이 결정된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날짜와 시간을 잡아 그에 따라 진행한다. 정해진 출퇴근 시간, 식사 시간, 심지어 버스, 열차, 항공기 탑승 시간까지 우리를 구속한다. 비 내리는 시간 태풍이 지나가는 시간, 일상이 모두 시계와 연관되어 있다.

시간은 운명을 좌우하기도 한다. 어느날 아버지께서 갑자기 출장을 가야 했다. 어머니께 연락하여 준비해 달라하고 집에 왔는데 준비가 덜 된 관계로 꼭 타셔야 하는 버스를 놓치고 말았다. 늦었다고 화를 내시며 다음 버스를 타고 출발하셨다. 그런데 앞차가 다리 위에서 미끄러지며 난간을 들이박고 강물로 추락하는 사고가 발생했다. 버스를 놓친 아버지는 잠시 뒤 현장을 지나치며 어머니께 감사했다고 말씀하셨다. 이렇게 시간은 인생을 결정짓기도 한다.

인생 자체가 시계다. 같은 틀 안에서 생활이 반복된다. 그런 반복된 생활을 하다 보면 그 안에서 삶의 의미를 찾게 되고 돌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한때 틀을 벗어나고 싶은 충동에 휩싸일 때도 있다. 하지만 벗어나는 순간 모든 규칙에서 벗어나며 나의 정체성을 잃어 버린다. 다시 본래의 나로 돌아오려면 상당한 시간이 필요하다. 물의 흐름처럼 다툼이나 갈등 없이 평정심을 갖고 살아야 하겠다.

오늘도 시계는 벽에 걸려있다. 생각 없이 도는 듯하지만, 생각은 있을 것이다. 바라보고 그에 맞추어 행동하는 우리가 있기에 그는 불평, 불만 없이 자리를 지킨다. 숫자 12까지밖에 없는 단순한 시계다. 그러나 그 속엔 모든 사람의 삶이 들어있다. 뜨고 지는 태양은 계절에 따라 변화하지만 시계는 변덕부리지 않고 우리 삶을 지켜준다. 벽에 걸려 말없이 돌고 있지만, 그의 보이지 않는 손으로 우리를 움직인다.

그는 많은 것을 바라지 않는다. 욕심이 전혀 없는 건 아니다. 그도 먹어야 살 수 있다. 가끔 건전지를 교체해 주거나 태엽을 감아주어야 한다. 그것이 수고한 것에 대한 보상이다.

시계가 빠르고 느린 것은 우리의 마음이다. 조급함과 느긋함 두 마음을 지녔기 때문이다. 공명 속 시간이다. 시계가 맹목적으로 돌고 있지만, 그 안에 흐름이 있고, 세월이 흐른다. 우리 인생은 목적 없이 살아가고 있는 듯하지만 그 안에 인생이 담겨있다.

SNS 기사보내기
기사제보
저작권자 © 충청매일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