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청매일] “엄마, 난 소만도 못해!”

밤중이 아들 창남이가 푸념을 했다.

“무신 소리를 하는겨?”

“오늘 최 참봉 어른을 따라 우시장에 갔는데, 소가 나 보다도 훨씬 비싸!”

밤중이가 결국 관아에 갇히자 집은 풍비박산이 되었다. 두 아들 중 둘째인 창남이는 나이가 어려 최 참봉집 머슴이 되었고, 맏이인 창복이는 청풍관아에서 한양 관아로 올려 보내는 관사노가 되어 집을 떠났다. 온 식구가 졸지에 뿔뿔이 흩어지게 되었다. 그나따나 불행 중 다행인 것은 밤중이댁도 최 참봉집 허드렛일을 돕게 되어 둘째 창남이라도 곁에 끼고 살게 된 것이었다.

“쇠장엔 왜?”

“주인어른이 낮일이 끝나면  쇠뜨기를 하래.”

“낮일도 버거운데 어린 것한테 소까지 멕이라냐?”

밤중이댁은 최 참봉이 야속했지만 빚으로 팔려온 처지에 아무리 자식 일이라도 가타부타 서운한 내색을 할 수는 없었다.

“사람이 어째 소만도 못할 수가 있어?”

“소가 너보다 일을 잘 하니 소가 비싼 것 아니겄냐?”

어린 아들의 물음에 밤중이댁은 궁색한 변명을 했다.

“그럼 내가 최 참봉 어른보다 일을 더 많이 하니까 내가 더 비싸야겠네.”

“최 참봉 어른은 양반이니까”

“그러면 양반하고 소는 누가 더 비싼 거여?”

밤중이네는 말문이 막혔다. 어디서부터 어떻게 이야기를 해줘야만 저 어린 가슴을 시원하게 해줄 수 있을까. 조막만한 아들놈 생각에도 뭔가 억울한 생각이 들었는가 싶었다.

“우린 종이니까 그런 생각하지 말고 시키는 대로 일이나 하거라. 그런 거 자꾸 따지면 골만 아프다.”

갑자기 가슴이 심하게 저려오며 밤중이댁은 눈물이 울컥 솟았다.

고을민들 눈에서는 피눈물이 흐르는 데도 청풍부사 조관재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문제를 해결해보려는 방안을 찾기는커녕 미봉책조차 내지 않았다. 미봉책은커녕 한 푼이라도 더 짜내기 위해 고을민들을 닦달했다.

지금 청풍관아 창고는 텅텅 비어 있었다. 농민들로부터 거둬들인 세곡은 장부에만 남아 있을 뿐 어떤 인쥐가 몽땅 갉아먹었는지 창고 안에는 먼지만 수북했다. 본래 환곡의 절반은 창고에 남겨두고 나머지를 춘궁기에 농민들에게 빌려주었다가 가을에 이자를 쳐서 걷어 들이는 것이 원칙이었다. 그러나 관아에서는 전량을 모두 빌려주었다. 나머지 쌀도 방출함으로써 더 많은 이자 수입을 올리기 위함이었다. 부임해 오는 부사들마다 대궐의 고관대작들에게 상납한 약채와 관청의 부족한 재정을 메우기 위해 많은 돈이 필요했다. 또 창고에 환곡은 비어 있어도 한양의 경창에 입고시켜야 할 환곡 이자나 지방관아 경비로 쓰인 환곡 이자는 반드시 갚아야 했다. 그러다보니 이를 메우려는 방법도 가지가지였다. 관아에서는 봄에 빌려주었던 환곡을 가을에 거둬들이지 않고 모곡만 받아들였다. 모곡은 빌려준 환곡을 돌려받을 때 곡식을 쌓아두는 동안 줄어들 것을 예상하여 한 섬에 몇 되씩 미리 덧붙여 받는 곡식이었다. 그때문에 농민들은 춘궁기에 곡식 한 톨 구경도 못하고 관아 아전들이 붓끝으로 책정한 양에 따라 추수 때 이자를 바쳐야 했다. 소위 와환의 폐단이었다. 더욱 기가 찰 일은 농민들도 질 떨어지는 하미를 가져가고 가을에 질 좋은 알곡으로 바치는 것보다는 차라리 관아에서 분배한 이자만을 바치는 것이 오히려 낫다고 생각하는 것이었다. 이런 폐단은 모두 청풍부사와 관아 서리들의 포흠 때문에 발생한 것이었다. 이들은 관아 세곡을 자신들 것처럼 사사롭게 마구 써버렸다. 그러고는 장부에는 고을민들에게 빌려준 것처럼 허위로 작성하고 임기가 끝나면 다른 고을의 임지로 떠나버렸다. 그러면 새로 부임해 온 신임부사는 허위장부에 기재된 내용을 근거로 빌려간 환곡을 거둬들였고, 고을민들은 자신도 모르는 억울한 환곡과 이자를 바쳐야만 했다.

이러니 팔도 곳곳에 성한 곳이 없었다. 기민과 유민이 속출하고, 화적과 수적이 속출했다. 사방에서 탐관오리들의 횡포를 견디다 못한 백성들이 이를 비판하는 벽서사건이 하루가 멀다고 일어났다. 그러나 이런 벽서 또한 아무런 소용이 없었다. 벽서의 당사자들은 죄가 있어도 파헤치지 않았고, 힘없는 말단들만 족쳐 죄를 뒤집어씌우고 가둬버리니 근본적으로 문제가 해결될 리 없었다. 설사 죄가 드러났다 해도 뇌물을 바치고 매관매직을 했던 든든한 뒷배가 있었으니 곧바로 풀려 나왔다. 그리고는 돌아와 오히려 고변한 농민들에게 해코지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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