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청매일] 그런 사정은 비단 용출이네 집만이 아니었다. 내리 삼 년 흉년을 맞았는 데 온전한 집이 있을 리 없었다. ‘곳간에서 인심난다’고 한 해만 흉년을 당해도 없는 사람들은 일각이 여삼추처럼 느껴지는 터에 줄창 삼 년을 가뭄과 홍수로 피농을 했으니 북진도 인심이 갈수록 흉흉해져만 갔다. 이젠 실낱같은 희망도 남아있지 않았다. 거듭되는 굶주림에 사람들도 지칠 대로 지쳐가고 있었다. 그저 하루하루를 연명하는 것이 그들에게는 가장 시급한 문제였다. 누구라도 조금만 건드리면 금방이라도 살인을 낼 것처럼 살벌해졌다. 마을 분위기가 어수선하니 산짐승까지 내려와 설치며 사람들 마음을 흉흉하게 만들었다.

보름 전쯤 금수산 아래 백운동에서는 대낮에 호랑이가 마을까지 내려와 마당에서 놀고 있던 여섯 살 난 사내아이를 물고 갔다. 그렇잖아도 흉흉해진 민심은 이 일로 더욱 들썩였다. 청풍관아에서는 민심을 진정시키려고 호랑이를 잡을 포수들을 풀어 금수산으로 들여보냈으나 감감무소식이었다. 그러니 민심은 더욱 갈피를 잡지 못했다.

“호랑이도 오죽하면 사람을 잡어 갔겠어?”

“그러게 말여. 이왕이면 호의호식하는 양반님네나 물어가지 먹지 못해 말라 비틀어진 아새끼 뭘 뜯을 게 있다고 물어갔다냐?”

“호랑이라고 무서운 양반을 몰라보겠는가?”

“하기야 양반 잘못 물어갔다가는 금수산에 호랑이 씨를 말리려 난리를 피우겠지.”

모여 앉은 사람들마다 호환에 대한 이야기로 분분했다. 밤에만 움직이는 호랑이가 그것도 대낮에 마을까지 내려와 사람을 물어갔다는 사실이 흉흉한 민심과 편승해 더더욱 사람들의 마음을 불안하게 만들었다. 민심은 동요하고 있었다.

그러더니 며칠 전에는 한양에서 낙향해 청풍읍성에 살고 있던 예조판서 홍 대감의 며느리가 독살됐다는 소문이 파다하게 퍼졌다. 하루도 거르지 않고 먹지 못해 굶어 죽어가는 농민들이 속출하는 마당에 주검 하나쯤 별 대수롭지도 않는 일이었지만, 대감 집에서 일어난 살인사건이고 보니 청풍관아가 발칵 뒤집혔다. 충주에서 목사가 형방과 수하들을 대동하고 급히 달려왔다.

홍 대감은 며느리가 목을 매달아 자살을 했다고 했지만 여러 정황을 조사한 결과 자살로 단정하기에는 미심쩍은 부분이 너무나 많았다. 우선 며느리가 목을 맸다는 감나무 가지는 바닥에서 너무 높았다. 약한 여인이 그 높이까지 오르기도 힘들거니와 그 높이에서 뛰어내렸다면 약한 감나무가 부러졌거나 시신에 긁힌 자국이라도 있어야 했다. 그러나 시신이나 감나무에는 어떤 흔적도 없었고, 감나무에는 여러 번 줄을 당긴 마찰흔적만 남아 있었다. 의심이 가는 점은 또 있었다. 홍 대감은 며느리가 저녁 무렵에 자살을 한 것 같다고 했지만 저녁 무렵이면 의복을 제대로 갖추고 있었어야 했다. 그러나 며느리는 가벼운 속옷 차림이었다. 그 외에도 이상한 점은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쌀을 한 줌 가지고 오너라! 그리고 닭도 한 마리 가지고 오너라!”

목사가 형방에게 명령했다.

“시신의 입을 벌리고 가능한 한 목구멍 깊이 쌀을 밀어 넣거라!”

목사의 말이 끝나자 형방과 그 수하들이 시신의 입을 벌려 쌀을 밀어 넣었다. 그리고 목사는 시신을 방으로 옮긴 후 얼굴을 종이로 덮은 다음 불을 지피도록 했다. 서너 식경이 지난 다음 목사는 형방에게 은수저를 주며 시신의 입 속에 넣었던 쌀을 꺼내도록 했다. 형방이 은수저를 시신의 입에 넣고 퉁퉁 불은 쌀알을 꺼냈다. 그러자 입 속에 넣었던 은수저가 검게 변했다. 목사가 시신의 입 속에서 꺼낸 쌀알을 마당에 묶어두었던 닭에게 먹이도록 했다. 한동안 약빠르게 부리 짓을 하며 쌀을 주워먹었던 닭이 비칠거리더니 이내 두 다리를 쭈욱 뻗으며 죽어버렸다.

“이건 분명 비상이다!”

목사는 홍 대감의 며느리가 독살됐음을 확신했다. 누군가가 며느리를 독살한 다음 자살로 위장하기 위해 감나무에 매단 것이 분명했다. 그렇다면 여염집도 아니고 대감집의 안채까지 누가 들어와 약을 먹이고 나무에 매달기까지 했다는 말인가.

“형방, 이건 약을 먹인 살인이 분명하니 주변 인물부터 조사하거라!”

목사는 철저하게 내막을 밝힐 것을 지시했다.

 

SNS 기사보내기
기사제보
저작권자 © 충청매일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