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청매일] 용출이가 처음부터 가정을 내팽개치고 술과 투전판에 빠진 것은 아니었다. 자기 땅은 없었지만 청풍관아 아전으로 있는 민겸이의 땅을 부치며 열심히 살던 소작인이었다. 그러나 풍년이 들어도 소작료를 내고나면 양식이 모자라던 터에 흉년이 수년째 거퍼 들고 보니 일 년 내내 뼈 빠지게 일을 해도 남는 것이라곤 없었다. 더구나 수년간 당겨 먹은 장리쌀은 이자에 이자가 붙어 빚이 줄어들기는커녕 외려 늘어만 갔다. 그러자 용출이는 농사짓기를 포기하고 삼막골로 가족들을 데리고 들어왔다. 마누라에 딸들까지 여자가 열이나 되었으니 삼농사를 지어 베를 짜서 빚을 갚아볼 요량이었다. 예전부터 삼막골은 삼이 잘되는 주산지였다. 그러나 그것 또한 용출이 뜻대로 되지 않았다. 식구도 많았지만 워낙에 빌려다 먹은 장리쌀이 불어나 있어 베를 짜놓기 바쁘게 거둬갔고, 갖은 고생 끝에 숨겨놓았던 베 필을 모아 장마당에 가지고 나가도 돈이 되지 않았다. 경강상인들이 싣고 온 공방 베 때문에 값이 폭락했기 때문이었다. 온갖 궁리를 해서 힘을 써봐도 빚에서 빠져나올 수 없게 되자 낙심한 용출이는 투전판을 전전하며 술독에 빠져 살기 시작했다.

색시가 될 집에서는 시집의 가세를 살펴보기 위해 매파를 보내겠다고 귀띔이 있었지만 용출이는 벌써 며칠째 코빼기도 보이지 않았다. 용출이 댁 부뜰네는 걱정이 천근만근이었다. 마을에서 난봉꾼으로 소문이 자자한 터라 매파가 이웃집에 염탐만 하면 용출이네 집안 속 창알머리까지 낱낱이 드러날 것이었고, 그저 사람들이 잘 말해주기만 기다릴 뿐 별 방법이 없었다. 동네에 난 소문도 문제였지만 더 큰 문제는 집안 살림 꼴이었다. 독에는 쌀 한 톨 남아있지 않았으니 매파가 와도 밥 한 사발 끓여줄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 꼴을 매파가 사돈댁에 전하기만 한다면 혼사는 불 보듯 뻔한 일이었다.

부뜰네는 갖은 궁리 끝에 매파를 속이기 위해 빈 쌀독에 큰 바가지를 서너 개나 포개 엎어놓고 흰쌀을 위에만 살짝 부어 눈속임을 해 놓았다. 춘궁기가 지나고 가을 추수는 아직도 멀기만 한데 웬만한 부잣집이 아니면 쌀 구경한다는 것은 생각지도 못할 일이었다. 그럭저럭 끼니를 잇는 집이라 해도 쌀밥 구경은 조상님 제사 모시는 날이나 가능했다. 그것도 제사상에 올릴 쌀을 봉지에 담아 천장에 매달아 놓았다가 기일 날 조상님의 모가치만 덜어 밥을 짓는 것이 고작이었다. 그러니 제사를 모셔도 집안에 제일 어른이 아니면 흰쌀밥 구경은 어림도 없었다. 그런 지경에 용출이네 집에서 쌀을 재워놓고 먹는다는 것은 언감생심 꿈에도 생각지 못할 일이었다. 부뜰네는 아주 급할 때 쓰기 위해 감추어 두었던 몇 푼의 돈과 추수 때 품팔이를 해서 갚아주기로 하고 사정사정 끝에 신 부자에게 쌀 반말을 얻어다 독을 채웠다. 매파가 잘 속아 넘어가줘야 할 텐데 부뜰네 가슴속은 쪼그랑 망태기가 되었다.

매파가 오기로 한 날 부뜰네는 집에서 어른대는 딸네들을 얼씬도 못하게 쫓아버리고 집 안팎을 말끔하게 치웠다. 아무리 치워야 곰보 분칠하기였지만 집이라도 소제를 해 놓아야만 마음이 편할 것 같았다. 매파가 용출이네 집에 당도한 것은 아침 새참이 조금 넘은 시각이었다. 매파는 가재미눈을 해가지고 집안 구석구석을 살폈다. 그럴 때마다 부뜰네는 오금이 저리고 가슴은 오그라 붙었다.

“바깥어른은 어디 출타중이신가?”

바느질하듯 촘촘하게 집안을 살피던 매파가 부뜰네에게 물었다.

“집안에 대사가 있어서 일가집에 잠시…….”

부뜰네가 엉겁결에 핑계를 대기는 했지만 매파가 속을 훤히 알고 있는 것 같아 왠지 속이 뜨끔했다.

“새아기 들어오면 굶기지는 않겠수? 워낙 곱게 커온 아기씨라.”

“그럼은요. 주시기만 한다면 담 넘는 것 빼고는 뭐라도 해서 신주 받들 듯 할꺼구먼유. 매파가 잘 좀 얘기해서 꼭 좀 성사되게시리 해주시구려. 내 그 은혜는 잊지 않겠구먼유.”

부뜰네가 매파에게 잔뜩 매달렸다.

“찬은 웂지만 내 서둘러 밥을 지을 테니 한 술 뜨고 가시구려.”

부뜰네가 서둘러 일어서서 보란 듯 쌀독 앞으로 갔다. 매파도 따라 일어섰다. 부뜰네가 소래기를 열자 독 안에는 하얀 쌀이 그득했다. 부뜰네가 곁눈질로 매파의 표정을 살피자 놀라는 기색이 역력했다. 매파가 흡족해서 돌아갔다.

“용출이가 치마양반 행세깨나 하게 생겼구먼.”

쪽박이 깨지도록 궁핍한 살림과 내로라할 것이 좁쌀만큼도 없는 미천한 처지에 어떤 집과 사돈을 맺어도 용출이로서는 손해날 일이 없었다. 그런데 형편이 훨씬 월등한 사돈집을 등에 업고 덩달아 거들먹거릴 용출이의 꼬락서니가 눈에 선하자 마을사람들은 저마다 비아냥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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