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청매일] “불을 던져라!”

누군가 지르는 고함소리와 함께 배에서 징소리가 물소리를 잠재우며 울렸다. 동시에 장선협곡 양쪽 절벽 위에서 활활 타오르는 불덩어리들이 강물 위로 흩날리듯 떨어져 내렸다. 드디어 낙화놀이의 시작이었다. 협곡을 가로질러 쳐놓은 동아줄에 달린 화약통에서는 오색의 불꽃들이 꽃잎처럼 날리며 떨어졌다. 양쪽 절벽 꼭대기에서는 관노들이 바싹 마른 짚단과 솔가지, 검불 단에 불을 붙여 까마득한 계곡 아래로 집어 던졌다. 불꽃은 갖가지 모양새를 만들며 계곡을 가득하게 채웠다. 어떤 불꽃은 강바람을 타고 하늘 끝까지 치솟기도 하고, 어떤 불꽃은 점점이 흩어져 별처럼 떨어졌다. 구경꾼들이 탄성을 질렀다. 강 한가운데 떠있는 배에서는 풍악소리가 더욱 커지고 장선협곡에서 펼쳐지는 낙화놀이도 한층 현란함을 더해갔다.

“우리 같은 무지랭이는 뼈가 빠지게 일을 해도 열흘에 밥 한 번 구경하기도 바쁜데 저들 양반네들은 무슨 복을 타고 났기에……."

“저런 여력 있으면 백성들 허기진 배나 좀 채워주지.”

“타고 나기를 노는 놈과 일하는 놈으로 갈라져 생겨났는 데, 저들이 우리 같은 것들을 뭣 땜에 걱정한디야?”

“배는 고파도 구경 한번 좋기는 좋다!”

“하루를 살다 뒈지더라도 저렇게 한 번 놀아 봤음 좋겠다!”

사람들이 낙화놀이를 구경하며 저마다 감탄과 탄식을 늘어놓고 있을 때 금수산 꼭대기에서 보름달이 떠올랐다. 보름달이 장선협곡과 청풍호반을 은빛으로 물들이며 떠오르자 이제까지와는 다른 환상적인 불꽃놀이가 펼쳐졌다. 제각각 펼쳐지는 것처럼 보이던 뱃놀이와 낙화놀이가 달빛 속에 하나로 모아지며 입체처럼 어우러졌다. 대덕산 너머로 달이 이우러질 때까지 달빛 가득한 청풍호반 위에서는 조관재 부사와 양반 토호들의 뱃놀이와 낙화놀이는 계속되었다.

 

④ 나날이 민심은 흉흉해져만 가다

수년째 지속되고 있는 삼남 지방의 흉년으로 인심은 흉흉하기 그지없었다. 조정에서는 피농한 농민을 구제한다며 세금을 유예시키는 등 민심수습에 골몰했지만 실제 피부에 닿는 도움은 없었다. 오히려 지방 관아나 토호들은 굶주림에 시달려 바람만 불어도 쓰러질 농민들에게 갖은 무명잡세를 부과하여 힘겨움을 더해주었다. 삼남 지방 곳곳에서 도둑이 횡행하고 크고 작은 민란들이 속출했다. 농민들의 고통스런 삶은 북진도 마찬가지였다. 이런 와중에도 북진 인근 제천에서는 포교를 다니던 프랑스 신부가 체포를 당해 처형을 당하고, 천주교도 색출을 빙자한 교졸들의 작폐에 민심은 더욱 흉흉해지기만 했다.

아무리 어지럽고 힘겨운 세상이라고 해도 자식이 장성하면 부자나 가난뱅이나 자식 혼사가 걱정이고, 부모상을 당하면 상을 치르는 것이 인지상정이었다. 북진 서쪽 대덕산 골짜기에 사는 삼막골 용출이가 며느리를 본다는 소문이 동네에 퍼졌다. 어느 집이나 있는 혼사인데 유독 용출이네 집 혼사가 사람들 입에 오르내리는 것은 그만한 이유가 있었다.

“용출이가 며느리를 본다며?”

“장가를 가는 게 아니고 신부집에서 보낸 매파가 신랑집을 살피러 온다는구먼.”

“뭘루 며느리를 본댜? 주태백에다 투전판만 전전하는 그런 망종네 집구석에 여식을 주는 집은 도대체 어떤 집이래유.”

마을에서는 용출이 큰아들 장길이가 혼인한다는 소문이 나돌자 혹여 파투가 날까 그것을 더 걱정했다. 장길이는 용출이에게 금보다도 더 귀한 아들이었다. 장길이 위로는 누이가 아홉이나 있었다. 용출이가 딸을 아홉이나 낳고도 아들을 포기하지 못한 것은 대가 끊어지는 것을 조상에 대한 최대의 불효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용출이네 집안은 누대 째 독자로 대를 이어왔다. 만약 딸만 아홉을 낳은 끝에 장길이를 얻지 못했다면 용출이네 집안은 문을 닫아야 했다. 그래서 이웃에서는 용출이 마누라가 고추를 붙들었다고 ‘부뜰네’라고도 하고, 업신여기는 사람들은 딸만 아홉을 낳았다고 ‘구보지네’라고도 불렀다. 가세라고 할 것도 없는 용출이네 집은 ‘찢어지게 가난하다’는 표현조차 분에 넘쳤다. 애당초 아무것도 없는 집에 가난하다는 말도 사치스러울 뿐이었다. 자식을 열이나 내질러놓고도 가장인 용출이는 집안 살림에 관심도 없었다. 그저 하루하루 자기 입 하나만 그스르면 그것으로 끝이었다. 그런 집에 혼사를 위해 매파가 온다고 하니 마을사람인들 걱정이 되지 않을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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