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청매일] “부사님은 도대체 뭘 하시는 분이랴?”

“하긴 뭘 해. 백성들 피나 빨지!”

고을 백성들은 굶기를 부자집 밥 먹듯 하고 늘어나는 빚을 감당 못해 야심한 밤에 봇짐을 싸서 줄행랑을 놓고 있는데도 부사는 고을민들의 어려움은 안중에도 없이 풍류를 즐길 누각을 중수하기 위해 새로 기둥을 바꾸고 마루를 깔고 기와를 얹고 단청을 입히는 것이었다. 이를 보는 백성들의 복장이 터지는 것은 당연했다.

“확 불이나 싸지를까 부다.”

“아서라, 그나따나 애들 애비 없는 자식 만들지 말고…….”

“자식 굶기는 애비 있으면 뭣하냐?”

“그래도 가장이라도 있는 게 없는 것보다야 천양지차지.”

사람들은 관아에서 한벽루를 중건하는 모습을 보며 한마디씩들 볼멘소리를 했다. 그렇다고 양반들이 백성을 생각해 그 일을 멈출 것도 아니었다. 오히려 관아에서는 중건에 들어가는 비용과 인력을 충당하기 위해 고을민들을 더욱 조일 것이 분명했다. 조관재 부사는 벌써부터 고을민들을 부역에 동원하고 갖가지 명목으로 기부금을 걷고 있었다.

“그나저나 언제까지 이런 질긴 목숨을 부지하고 살아야 한다냐? 똥바닥에 굴러도 이승이 낫다고 어떤 땡초가 그랬다지만 하루를 살아내는 것이 여삼추 같으니 아비규환같은 세상 지금 당장 떠나도 아쉬울 것도 없어!”

“그놈 서당물 좀 먹었다고 유식자랑하냐. 여삼추, 아비규환이 뭐여? 아니꼽게!”

“무식한 놈! 귀담아 듣고 배울 생각은 않고 그저 배창시만 꼬여서. 그러니 상놈이지!”

“아비규환 안다고 양반이냐?”

“조렇게 꼬부라진 놈은 어디에 쓸꼬.”

“한벽루 서까래에나 쓸란다.”

“그만들 두라고. 가뜩이나 주린 배 허기나 더 지게하지 말고.”

“굶는 식구들 생각하면 하루가 석삼년이여.”

“못난 돌은 담이나 치고, 구부러진 나무는 아궁이나 넣지. 처자식 굶기는 나같이 못난 건 뭐에 쓸꼬.”

한벽루를 바라보는 농민들 입에서 저마다 한탄만 흘러나왔다.

그런데도 조 부사는 한벽루 공사가 끝나자 중건을 축하한다며 청풍 관내 양반 토호들을 불러 연회를 열었다. 그리고 한벽루 앞 청풍호반에는 뱃놀이를 하기 위해 여러 척의 배들을 단장시켰다. 제일강산 장선협곡의 양쪽 절벽 위에는 밤이 되면 즐길 낙화놀이를 위해 짚단과 검불단이 산더미처럼 쌓여 있었다. 벌써 서너 날 전부터 청풍관아에서는 관노들을 동원하여 한벽루 중건에 맞춰 연회를 벌이기 위한 준비로 난리를 피웠다.

예전부터 청풍호반에서는 양반들이 강에 배를 띄워놓고 강 연안의 경치를 구경하며 시를 짓거나 소리를 하며 흥겹게 놀던 뱃놀이가 유행했었다. 특히나 팔월 기망에 제일강산으로 이름난 장선협곡 사이로 뜬 달을 보며 낙화놀이와 함께 즐기는 선상놀이는 청풍에 부임해오는 부사라면 누구나 한번쯤 즐겨보고 싶은 꿈이었다. 그러나 시절이 하 어려우니 부임해온 부사들마다 뱃놀이를 할 엄두를 내지 못했다. 그러나 새로 부임해온 청풍부사 조관재는 굶주림에 시달려 새우등이 된 고을민들은 안중에도 없었다.

한벽루 누마루 위에는 부사와 고을 양반 토호들이 모여 상다리가 휘어지게 차려진 상을 앞에 놓고 종일토록 음주가무를 즐기고 있었다. 누각 아래 강물 위에서는 이들이 즐길 뱃놀이 준비가 한창이었다. 향응이 벌어질 큰 배 세 척을 서로 연결하여 뱃마루를 깔고 사방에 기둥을 세우고 차일로 햇빛을 막았다. 그리고는 배 위에 차려진 주안상을 중심으로 악대와 기생들이 열을 지어 한벽루 위 양반들이 내려오기를 기다렸다. 뱃놀이가 벌어질 큰 배 주변에는 작은 쪽배들이 쉴 사이 없이 나루를 오가며 술과 음식을 실어 날랐다. 배에서 바라다보는 청풍 호반의 풍광은 어느 한곳 버릴 곳이 없었다. 특히 청풍호반에서 보는 제일강산 장선협곡은 낮에 보아도 미인의 얼굴처럼 미운 곳이 없었다. 하물며 강물 위에 떠있는 배에서 한밤중 협곡 사이로 가득하게 떠오르는 보름달을 보는 것은 일품 중 일품이었다.

강가에 어스름이 드리워지자 강에 떠있는 배 위에 하나둘 등불이 켜졌다. 낮부터 시작한 연회에 만취된 부사와 양반 토호들이 달구경과 낙화놀이를 즐기기 위해 배 위로 자리를 옮겼다. 강가에도 낙화놀이를 보기 위해 몰려든 인근 사람들이 강가 모래밭을 메웠다. 점점 사방은 어두워져가고 강 가운데 떠있는 큰 배를 중심으로 떠있는 쪽배들에서도 일시에 등이 밝혀지자 강 가운데에 집채만한 꽃이 활짝 피어났다. 강가에 열 지어 서 있던 사람들도 일제히 횃불에 불을 밝혔다. 횃불이 줄나래비를 이루며 강을 밝혔다. 주안상이 차려진 큰 배에서 풍악소리와 함께 기생들 노랫소리가 강물을 타고 흘러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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