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가

[충청매일] 마을 어귀에 세 그루의 느티나무가 천년 세월을 지키고 있다. 마을로 들어가려면 이곳을 지나야 한다. 그들의 몸에는 새끼줄에 흰 종이나 오색 천 조각을 꿰어 칭칭 감겨 있다. 마을의 안녕과 풍년을 기원했던 신목(神木)으로 신성시되어왔던 나무다. 그 나무에 어느 날 이름이 붙여졌다.

느티나무가 아닌 서낭나무였다. 매년 음력 정월이면 마을 사람들이 모여 새끼를 꼬았다. 새끼에 창호지나 오색 천 조각을 꿰어 일 년 농사의 풍년과 마을 사람들의 부귀영화를 비는 제를 지냈다. 그러니까 이 나무는 나무가 아니라 신목으로 존재하고 있었다.

초등학교 다닐 적 이야기다. 학교를 마치고 집에 오다가 우리는 나무에 올라가 숨기 놀이를 했다. 그러다 가는 가지를 타고 내려오기도 하며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놀았었다. 그러다 마을 어른을 만나면 신성한 곳에서 장난치고 놀면 안 된다고 야단을 맞기도 했다.

나무에 이름이 생겼다. 매번 그냥 지나치다가 어느 날 잠시 쉬었다 가기로 하고 차를 멈췄다. 그동안 보지 못했던 표지판을 발견했다. 이 나무의 이름이 ‘독립군 나무’라고 씌워져 있었다. 일제 강점기 때 나무 위에 숨어 일본 순사들의 동태를 살피다, 사람들을 잡아가기 위해 마을로 오면, 알려주어 피신하게 했다고 한다. 강제노역을 시키기 위해서나 일본식 이름으로 바꾸지 않은 사람들을 잡아갔는데 그때 이 나무가 큰 역할을 했었다는 것이다.

느티나무는 천년의 기록을 담고 있다. 마을이 조성되기 전에 심어졌는지 마을이 조성되고 심어졌는지는 알 수 없다. 그 내막은 레코드판처럼 둥근 나이테에 기록된 일기 해독만이 풀어낼 수 있다. 그 안에는 나의 짧은 인생도 있지만, 선조 몇 십대의 삶도 기록되어 있을 것이다. 누가 언제 태어나 무엇을 했고, 얼마나 살다가 죽었는지 모든 내용이 담겨있을 것이다.

들판의 곡식이나 과일나무들처럼 물질적으로 주는 것은 없다. 그러나 서낭목은 물질보다 정신적으로 마을에 커다란 지주가 되어 주었다. 신으로 존재하고 있었다. 그러나 지금 그의 몸에는 새끼줄도 오색천도 없다. 마을을 찾는 사람들에게 휴식을 제공할 뿐이다. 우리 인생은 순간에 지나친다. 우리는 가고 없어도 지금처럼 또 후손들과 살아가며 아무 일 없었다는 듯 기록만 담게 될 것이다.

우리는 우리들의 일기장에 하루하루를 기록한다. 울창하게 서 있는 마을의 수호신도 하루하루 그렇게 천년을 기록했을 것이다. 그 안에는 전쟁도 있을 것이고 전염병으로 인한 고통의 세월도 담겨있을 것이다. 표정 변화 없이 늘 아픔을 간직하고 어루만지며 또 한 해를 보내고 있다.

그는 오늘도 마을의 안위와 태평성대 풍년을 기원한다. 치렁치렁 새끼줄로 치장했던 옷가지를 벗어 던지고 ‘독립군 나무’로 호칭을 얻고 새롭게 출발한다. 이름만큼이나 아름다운 단풍을 물들이고 마을과 어우러진다. 그들은 그렇게 살아왔고 살아갈 터이다.

과거와 현재가 공존하는 느티나무다. 그 안에 천년의 일기가 기록되어 있다. 그런데도 우리 전통문화와 풍습이 사라져가는 현실이 안타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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