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청매일] 아이들까지 잃어가며 개간한 땅을 허공에 날려버리고, 이제는 살아있는 자식까지 머슴으로 보내라는 최 참봉의 전갈을 받고 밤중이는 눈이 뒤집혔다. 밤중이가 낫을 움켜쥐고 최 참봉 집으로 달려갔다. 분기탱천한 밤중이가 대문을 박차고 들어가도 최 참봉네 가솔이고 노복이고 누구 하나 섣불리 달려들어 잡지 못했다. 밤중이가 최 참봉네 사당 문짝을 부수고 들어가 신주를 모두 쓸어다 마당에다 내동댕이치고 도끼로 박살을 내고 불을 질렀다. 그 일로 인하여 밤중이가 관아로 끌려가 고초를 겪게 된 것이었다. 그러나 실상은 다른데 있었다. 최 참봉의 고변으로 밤중이가 관아로 잡혀오고 청풍부사 조관재가 밤중이를 엄중하게 문초하고 있는 속내는 제 놈들 뱃속을 채우기 위한 시커먼 속셈이 숨어 잇었다.

신임 청풍부사 조관재가 고을민들을 잔혹하게 수탈하는 것은 원납전 일만 냥을 내고 수령 자리를 샀기 때문이었다. 조관재는 본래가 공부를 해 입신한 선비 출신이 아니라 도성 밖 어느 시골에서 넓은 땅을 가지고 떵떵거리던 토호였다. 소작인들을 착취해서 큰 재산을 긁어모은 조관재에게 남은 평생소원이 있다면 시골 어디 말직이라도 고을 원 자리를 한 번 해보는 것이었다. 마침 대원군이 왕실의 권위를 높이기 위해 경복궁을 중수하자 많은 자금이 필요했던 조정에서는 강제로 백성들에게 기부금을 징수했다. 조관재는 이때 일만 냥의 기부금을 내고 관직을 산 것이었다. 언제 모가지가 날아갈지도 모르는 조관재가 이 돈을 벌충하려면 관직을 이용해 고을민들을 착취하는 방법 외에는 없었다. 청풍에 부임하자마자 조 부사는 갖은 명목을 붙여 알뜰하게도 고을민들의 재물을 긁어모았다. 쌀이나 베로 받던 세금을 엽전으로 대납하게 해서 전황을 발생시킨 후 숨겨놓은 동전을 몰래 팔아 몇 배의 이득을 취하고, 밤중이가 당한 것처럼 일머리를 모르는 농민들을 속여 작지를 이용해 남의 땅을 통째로 빼앗기도 하고, 향시의 상인들이나 뜨내기 행상들에게까지 험표를 발행하여 장세를 뜯고, 심지어는 있지도 않은 사람을 장부에 올려 조정에서 내려오는 구휼미를 착복했다.

수년째 지속되는 흉년으로 조정에서는 농민들의 고통을 덜어주기 위해 여러 해결책들을 내려 보냈지만 조 부사는 교묘한 방법으로 변조시켰다. 조 부사는 흉년으로 가뜩이나 힘겨운 농민들에게 대동미 대신 내는 무명의 필수를 반으로 줄여주겠다고 방을 내걸었다. 그 대신 무명 값을 돈으로 환산해서 바치도록 했다. 농민들은 저마다 조 부사의 선정을 칭송했다. 하지만 농민들이 돈을 만들려고 무명을 팔러 장에 나가면 돈 있는 양반이나 장사꾼들은 돈을 숨겨놓고 내놓지 않으니, 돈을 구하려는 사람은 많고 돈은 나오지 않으니 오히려 돈의 가치가 높아져 한 필이면 되던 세금이 한 필 반이나 두 필은 팔아야 세금을 낼 수 있었다. 당연히 농민들로서는 더욱 힘든 지경이 되었다. 여기에다 청풍관아는 관아대로 한양의 경주인에게 많은 부채를 지고 있었다. 경저리라고도 부르는 경주인은 한양과 지방의 하급 관속 간에 연락 사무를 보던 여각 주인이었다. 이들은 지방에서 올라오는 향민의 접대와 보호가 주임무였으며, 수시로 지방관의 사속 역할을 하며 공납물품의 대납을 하기도 했다. 새로 임명된 관리를 위한 예물이나 부임을 위한 준비를 대신하거나, 지방에서 한양으로 공납해야 하는 물산이 기일 안에 도착하지 않으면 경주인이 대신 이를 납부했다. 또한 이들은 지방관이나 아전들에게까지 금전을 대부해주고 빠른 시일 내에 돈을 갚지 못하면 이자를 붙여 청구를 했으므로 자연히 그 액수가 증가하여 각 지방관청마다 사오천 냥의 빚을 지고 있었다. 지방 관청이나 관리들은 정상적인 방법으로는 그 빚을 청산할 수 없었기 때문에 결국 임지에 부임하면 관물을 팔거나 농민들을 수탈하여 이를 갚았으므로 온갖 폐해가 속출했다.

계속되는 흉년으로 먹을 것도 없는 살림에 한 놈만 뜯어먹어도 살기 힘든 판에 두 승냥이가 번갈아 뜯어먹으니 이중삼중으로 고혈을 빨리는 대상은 청풍 관내 농민들이었다. 조 부사가 관직을 얻기 위해 치렀던 대가에다 경주인에게 진 빚, 그리고 거기에 덤까지 얹어 봉창을 했기 때문에 죽어나는 것은 청풍관아 관할의 고을민들이었다.

“개뿔도 없어 모아둘 것도 없지만, 모아봐야 부사 관아아전 부자들이 몽땅 알겨가니 뭔 소용이 있냐?”

“그래도 그 집구석엔 모아 둘 거라도 있는 모양이네?”

“그러게 말여. 당장 먹고 죽을 것도 없는 데 모을 게 어딨어!”

“그렇다는 얘기여. 꽁꽁 숨겨놔도 어찌나 잘 찾아내니 그놈들 코는 개코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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