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청매일] “마당쇠야! 집사한테 보내거라!”

밤중이가 마당쇠를 따라 집사에게로 갔다.

“어째?”

“밭을 넘기려구유.”

“잘 생각했네! 빚이 불어나는데 그깟 쇠조밭 붙잡고 있다고 자네 것 되지 않어.”

집사는 밤중이를 생각하는 척 위로의 말을 했다.

밤중이가 최 참봉에게 진 빚은 원전 여든 냥에 이태 동안 이자가 복복리로 붙어 일백칠십 냥으로 불어나 있었다. 쌀로 치면 스무 섬을 빌려먹고 마흔 섬을 갚는 셈이었다. 그러나 장례를 치르기 위해 빌려먹은 쌀은 하미였고 갚을 때는 상미 값을 주었으니 실제로는 원전의 세 곱절 네 곱절이 족히 넘었다. 집사는 밤중이의 밭을 이백 냥을 쳐주겠다고 했다. 비록 무너미 쇠조밭이긴 했지만 하루갈이가 넘는 넓은 밭에다가 밤중이가 워낙에 공을 들인 땅이라 어느 옥토 못지않게 기름졌다. 밤중이는 집사가 밭 값을 말할 때도 개간할 때 고생스러웠던 기억이 떠올라 못내 가슴이 저렸다.

“입안은 내가 관가에 가서 헐테니 자네는 걱정 말게. 그리고 나머지 서른 냥은 입안이 끝나면 주겠네!”

집사가 빚을 제하고 난 나머지 돈은 입안을 끝낸 후 주겠다고 말했지만, 밤중이의 마음은 여전히 무너미 쇠조밭에 가 있었다.

입안은 백성들이 집이나 토지를 매매할 때 절차를 밟아 관아의 허락을 받는 일이었다. 관아에서는 호방이 이 일을 담당했는 데, 매매 후 일 백일 이내에 신고를 하고 관아에서 작지를 발급받아 허가를 받도록 규정하고, 만약 이를 지키지 않으면 토지와 매매금액을 몰수했다. 그러나 입안절차가 복잡하고, 매매 당사자가 모두 관아에 출두해야 했고, 행정력이 고을고을까지 미치지 못해 전답 소유자의 변동을 관아에서 알지 못했고, 관아에서 발행하는 작지 값이 과중해서 입안이 제대로 행해지지 않았다. 매수인이 입안을 받을 경우에는 논밭과 집의 면적에 따라 정해진 금액만큼의 작지를 구입해서 관아에 납부를 해야 했다. 작지는 본래 호조나 한양의 경창에서 징세 사무에 필요한 종이값을 충당하기 위해 거두던 본세 외에 부과하던 과외의 세금이었다. 작지를 부과하는 기준은 전답은 한 짐에 한 권, 가옥의 경우 기와집이면 한 칸에 한 권, 초가는 한 칸에 열 장이 매겨졌으며, 아무리 면적이 넓어도 스무 권을 넘지 못하도록 규정되어 있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면서 종이 대신 쌀로도 대신 할 수 있도록 했다. 작지 한 권에 해당하는 금액은 쌀 이 두, 즉 두 말에 해당되는 액수였다. 그런데 실제로는 스무 권 이상 징수하거나 종이 대신 면포를 요구하는 등 여러 폐단이 있어 매수자는 작지를 마련하기 위해 고통이 컸고, 수령 중에는 작지를 빌미로 자신의 배를 불리는 자도 있었다.

새로 부임해온 청풍부사 조관재가 그런 위인이었다. 조 부사는 청풍에 부임을 하자마자 손바닥만한 따비밭을 매매할 때도 작지를 발급했다. 세태를 빨리 파악한 약빠른 놈이나 있는 부자들은 미리 부사에게 약채를 먹여 수십 두락을 한꺼번에 매입하고도 작지는 병아리 오줌만큼밖에 납부하지 않았다.

밤중이는 최 참봉집 집사가 대신 입안을 해준다는 말을 그대로 믿고 집으로 돌아왔다. 그 밭을 개간할 때는 워낙에 아픔도 많았고 수확을 했을 때는 너털웃음도 주었던 땅이라 서운하기도 했지만, 자신은 땅 가질 복이 없는 사람이라고 스스로 자위를 하며 위안을 삼았다. 그래도 밤중이는 가슴 한가운데가 뚫린 것처럼 허전했다.

그런데 문제가 생긴 것은 한여름이 지나고 제법 서늘한 바람이 불기 시작하던 가을의 문턱에서였다. 청풍관아에서 출두하라는 전갈이 왔다. 밤중이는 가슴부터 철렁 내려앉았다. 농민들에게는 상을 준다고 오라고 해도 피하고 싶은 곳이 관아였다. 관아로 가는 것이 호랑이 아가리 속으로 들어가는 것처럼 무서웠지만, 무슨 일인지 영문도 모르면서 무조건 피하기만 할 수도 없는 일이었다. 밤중이는 두근거리는 가슴을 싸안으며 관아로 갔다. 밤중이는 거기에서 호방으로부터 청천벽력과 같은 소리를 들어야 했다. 호방은 불법으로 토지거래를 했으니, 밤중이의 땅과 최 참봉이 지불한 돈 일백칠십 냥을 모두 몰수한다는 것이었다. 밤중이는 호방 말을 들으며 최 참봉에게 진 빚을 제하고 받기로 했던 서른 냥만 포기를 하면 될 것이란 생각을 했다. 서른 냥이면 쌀이 일곱 섬으로 살림에는 요긴하게 쓰일 돈이었지만, 애지중지하던 피와도 같은 땅을 포기하고 났던 터라 돈 삼십 냥을 포기하는 것은 처음보다는 가슴이 덜 아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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