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청매일] 보통 농촌에서 성행하던 고리대는 춘궁기에 장리쌀을 빌려주고 가을 추수 때 약간의 이자를 쳐서 받는 것이었다. 아전들이나 부자들은 농민들의 다급한 사정을 이용해 온갖 방법을 동원해 자신들의 치부에 이용했다. 더더욱 고을민들의 살림을 더욱 피폐하게 만든 것은 돈이었다. 장리쌀만 해도 봄에 두 말의 쌀을 빌려먹으면 가을에 이자까지 서 말을 갚아야 하는 오 할의 고리였다. 그런데 관아의 아전들이나 부자들은 화폐의 유통이 빈번해지자 춘궁기에 쌀 대신 돈을 빌려주었다. 이들이 돈을 빌려주는 것은 조정에서 금지하는 고리대금을 피하며 더 많은 이자를 뜯기 위한 새로운 착취방법이었다. 대체로 양식이 떨어지는 봄에는 쌀이 귀하고, 오곡이 익는 가을에는 돈이 귀했다. 봄에 한 냥을 꾼 고을민은 가을에 한 냥 닷 전을 갚아야 했다. 문제는 계절에 따라 돈의 가치가 확연하게 달라진다는 점이었다. 쌀이 귀한 봄에는 한 냥을 주고 쌀 두 말을 샀지만, 가을에는 쌀이 넘쳐나 너 말은 살 수 있었다. 그러니 한 냥 닷 전을 돈으로 갚아야 하는 고을민들 입장에서는 쌀로 환산하면 두 말을 먹고 여섯 말을 갚는 셈이었다. 고을민들로서는 이중삼중의 고통을 겪는 셈이었다. 관아에서는 고리대금을 엄격하게 금하고 있었지만, 당장 배를 굶주리며 내일이 어찌될지 모르는 고을민들 처지에 법이 도움이 될 리 없었다. 이러한 장리쌀과 고리대로 고을민들 살림은 몰락할 수밖에 없었다. 결국 돈을 갚지 못한 고을민들은 빚 대신 가진 것을 모두 빼앗기고 그것도 없는 집은 자식을 관노나 부잣집 종으로 보내는 사람도 부지기수였다.

관아 아전들이나 부자들은 염치도 없었다. 북진여각에서 배곯는 고을민들을 위해 풀어놓은 하미까지 자신들이 빌려준 장리쌀의 이자로 걷어 들였다. 그리고는 그 하미를 높은 고리로 다시 꿔주었다. 참으로 몰염치한 행태였다.

“이놈들아! 차라리 걸뱅이 쪽박을 뺐어가라!”

“에이, 악독한 놈들! 다 처먹고 피똥이나 한 바가치 쏟거라!”

사람들은 식구들 목숨줄 같은 하미를 빼앗아가는 교리 최 참봉집 큰아들 동탁이와 머슴들 뒤통수에 대고 욕지거리를 해댔다. 하지만 하늘에 주먹질하기였다. 최 참봉은 장리 빚을 구실로 값이 나갈만한 것은 숟가락 몽당이까지 빼앗아갔다. 하기야 그놈들의 무치함이야 새삼 말할 것도 없었다. 최 참봉집 머슴들은 마을을 수시로 돌며 조상님 기일에 쓰려고 벽장에 매달아둔 쌀을 걷어가는 것은 예사였고, 이듬 해 종자로 쓰려고 갈무리해 둔 씨앗까지 빼앗아갔다. 이놈들은 고을민들 중에 조금이라도 돈이나 곡물이 생겼다는 소문을 들으면 득달같이 달려와 강탈을 해갔다. 그런 놈들이 하미라고 그냥 둘 리 없었다. 이제껏 굶주림에 시달리다 하미라도 끓여 오랜만에 허기라도 면해 보려던 사람들은 허탈해서 더욱 허기가 졌다. 그런 악독한 놈들에게 욕지거리를 해봤자 주린 배에 허기만 더할 뿐이었다.

② 신임 청풍부사 농민들 고혈을 짜다

이현로가 떠나고, 새로 청풍부사 조관재가 부임해온 이후 관아 동헌 앞마당에는 하루도 조용한 날이 없었다. 구관이 명관이라더니 그래도 이 부사는 공무에 사적인 일을 결부시켜 농민들을 호달구지는 않았다. 그러나 신임 조 부사는 청풍에 부임하자마자 농민들을 관아로 잡아들여 쥐어짜기 시작했다. 명목은 관아의 세곡을 빌려간 농민들에게서 환곡을 환수하기 위해서라고 했지만 실상은 자신의 개인적인 욕심을 채우기 위해서였다. 조관재 부사는 아침 햇살이 채 퍼지기도 전부터 새터 마을 밤중이를 형틀에 묶어놓고 주리를 틀고 있었다. 그러나 밤중이의 죄는 주리를 틀 정도로 중한 것도 아니었다. 그런데도 조 부사는 중죄를 지은 죄인에게나 행사하는 주리를 서슴없이 가했다. 밤중이가 관아에 붙잡혀와 형벌을 당하게 된 것은 국법을 능멸했다는 죄목이었다. 밤중이가 국법을 능멸했다고 관아에 고변한 사람은 교리에 사는 최 참봉이었다.

“부사 영감! 제가 능멸당하는 것은 얼마든지 참을 수 있지만 조상을 욕보인 것은 자손 된 도리로 도저히 참을 수가 없습니다. 더구나 예를 숭상하는 나라 근본법을 어겼으니 영감의 중한 처분을 바랍니다!”

최 참봉은 조 부사에게 밤중이의 죄상을 밝히고 그에 대한 처결을 해줄 것을 요구했다.

“죄인 배주칠은 어찌하여 그런 엄청난 죄를 범했는고?”

최 참봉의 말이 끝나자 조 부사가 밤중이에게 물었다. 배주칠은 밤중이의 본명이었다. 밤중이는 마을사람들이 부지런한 그에게 붙여준 별명이었다.

“…….”

조 부사의 물음에도 밤중이는 대답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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