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진명
온깍지활쏘기학교 교두

[충청매일] 오늘날 활터에서 쓰는 활 장비는 유엽전입니다. 조선시대에는 활도 다양해서 철궁, 철태궁, 예궁, 대궁, 동개궁, 정량궁, 각궁, 목궁 등 8가지 정도였습니다. 기능과 탄력이 각기 달랐기 때문에 그에 따라 과녁도 가지가지였습니다. 이렇게 많던 활들이 갑오경장의 무과 폐지와 함께 다 사라지고, 건강용으로만 쓰이던 각궁이 남아서 오늘날까지 이어오는 것입니다. 각궁에 쓰이는 화살을 유엽전이라고 합니다. 전쟁 때 끼운 화살촉의 모양이 버들잎처럼 뾰족하고 날카로워서 유엽전이라고 하게 된 것입니다. 버들 류(柳) 자 때문에 버드나무로 만든 화살이라고 생각하기 쉬운데, 그건 틀린 지식입니다. 시누대라고 하는 가늘고 긴 종류의 대나무로 만듭니다.

이 유엽전 과녁의 크기는 무과에서 가로 4.6자(1cm) 세로가 6.6자(203cm)였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조금 커졌습니다. 가로가 6.6자(200cm), 세로가 8.8(267cm)자입니다. 쉽게 ‘육육팔팔’이라고 기억합니다. 이렇게 커진 것은 편사의 영향이 큽니다. 편사 때는 과녁을 맞히면 획창을 합니다. 3중부터 지화자가 붙습니다. 4중은 두 겹 지화자, 5중은 세 겹 지화자가 붙으면서 흥취를 한껏 북돋웁니다. 그런데 과녁이 작으면 시수가 잘 안 나서 획창을 부를 기회가 많이 줄어듭니다. 그러다 보니 흥취를 돋우고 싶은 마음에 과녁을 조금 더 크게 해서 잘 맞도록 한 것입니다.

자, 얘기가 나왔으니, 거리에 대해서도 짚고 넘어가겠습니다. 유엽전의 과녁 거리는 120보, 또는 80칸입니다. 같은 거리를 나타내는 표시법입니다. 그런데 지금은 145m입니다. 옛날에 해방 전에 활을 쐈던 분들은 과녁 거리가 지금보다 더 멀었다고 합니다. 해방 후에 거리가 더 짧아졌다는 결론입니다.

이것은 조선 시대 척관법을 미터법으로 환산하면서 생긴 오류입니다. 즉 120보를 미터로 환산하자면 옛날 자가 몇 cm인가를 알아야 하는데 여기서 혼란을 겪은 것입니다. 이유가 있습니다. 조선 시대의 자는 영조척 1자 길이가 30.8cm였는데, 일본의 자는 30.3cm였습니다. 우리는 대뜸 일본 자를 적용하는 버릇이 있습니다. 그러나 무과는 조선의 유산이지 일본의 제도가 아닙니다.

이에 따라 120보를 환산하면 이렇습니다. 1보는 주척 6척이고, 영조척 30.8cm를 주척으로 환산하여 120을 곱하면 149.466cm가 나옵니다. 이로 보면 해방 전에 활을 쐈던 분들의 기억이 정확한 것이죠. 소수점 이하를 올리면 150m가 나옵니다. (“한국의 활쏘기”)

이러던 것을 대한궁도협회에서 1963년에는 147m로 바꿉니다. 이게 웬 황당한 숫자인가 하고 추적을 해보니, 120보 환산할 때 조선이 아닌, 일본의 자를 적용한 것입니다. 영조척과 주척의 비율이 1:0.674이기 때문에 일본의 자 주척 1척은 20.422cm가 되고 이것으로 120보를 환산하면 147.039cm가 나옵니다. 1969년에는 더욱더 대범해져서 일본의 칸 수로 80칸을 환산하여 145m로 규정을 바꿉니다.(“온깍지 활 공부”)

우여곡절 끝에 정리된 오늘날 과녁 거리 145m는, 망한 나라의 후예들이 겪는 혼란을 상징처럼 보여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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