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진명
온깍지활쏘기학교 교두

[충청매일] 획일성과 경직성은 전통문화를 죽이는 가장 빠른 독약입니다. 복장을 보면 활터가 어떤 위기에 놓였는지를 한눈에 알 수 있습니다. 아무리 양보를 해도 전통 활쏘기에서 러닝셔츠 바지 같은 흰색 옷은 좀 아닌 듯합니다.

문제는 이런 복장의 변화가 활터의 겉모습을 엄청나게 변화시켰다는 점입니다. 먼저 수 백 년간 써오던 팔찌가 사라져버렸습니다. 원래 한복은 품이 넉넉합니다. 당연히 소매도 품이 넓어 길게 늘어지죠. 활을 쏘면 시위가 소매를 훑습니다. 이렇게 늘어진 소매를 둘려서 동여매는 장비가 필요해집니다. 그래서 나온 것이 팔찌입니다. 아대처럼 줄을 지그재그로 넣어서 조이는 무사 전문용이 있고, 끈처럼 둘둘 감아서 끝을 빗장처럼 지르는 메뚜기팔찌도 있습니다. 활터에서 많이 쓴 것은 편한 메뚜기팔찌입니다.

늘어진 소매 때문에 생기는 불편함을 없애려고 유니폼의 소매를 러닝셔츠처럼 좁게 하고, 그래도 시위가 소매를 스칠 때는 양궁 장비인 암가드를 사다가 쓰기도 합니다. 저도 처음에 이것을 쓰다가 전통 활터에서 양궁 장비가 너무 어색해서, 옛날에는 어떻게 했나 하고 알아봤더니 팔찌라는 게 있었습니다. ‘조선의 궁술’에 그림까지 그려서 설명했습니다. 그걸 보고 플라스틱 자를 잘라서 만들어 썼는데, 나중에 서울 황학정의 성낙인 옹을 만나서 보여드렸더니 크게 웃으면서 너무 크다고 하시고는 자신이 쓰던 팔찌를 보여주시더군요. 제가 침을 질질 흘리니까 그 팔찌를 아예 저에게 주셨습니다. 저는 그것을 보물처럼 받아들고 와서 플라스틱과 대나무로 메뚜기를 깎아서 팔찌를 여러 개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2001년 온깍지궁사회 모임 때 오신 분들에게 나눠 드렸습니다. 이를 통해서 50여 년 전 사라진 팔찌가 우리 곁으로 돌아오게 되었습니다.

활터에서 한복을 안 입고 러닝셔츠 같은 옷을 입으니까 화살 차는 방향이 바뀌었습니다. 옛날에는 바지저고리를 입고 그 위에 궁대를 찼습니다. 그런 뒤에 그 위에 두루마기를 걸쳤죠. 궁대는 허리띠처럼 생겼는데, 평상시에는 각궁을 넣어두다가 활을 쏠 때는 벗겨서 허리에 차고 화살을 꼬여놓는 것입니다. 허리춤에 꿰인 화살을 하나씩 빼어 쏘죠. 그러면 화살은 길어서 두루마기 옷깃 사이로 깃 쪽이 삐져나오게 됩니다. 방향은 어떨까요? 오른손잡이의 경우 배꼽 밑에 화살을 차야만 살대가 옷깃 사이로 삐져나오게 됩니다. 화살이 왼쪽 허리께에 걸려서 오른쪽 발등 쪽으로 늘어지게 됩니다.(‘전통 활쏘기’)

요즘은 이와 반대로 찹니다. 즉 오른쪽 허리춤에 걸어서 오른발 앞쪽으로 늘어지게 차죠. 이렇게 바뀐 것이 언제라는 기록도 남지 않았습니다. 다만 사진을 보면 1960년대 무렵부터 이렇게 바뀐 것 같습니다.

문제는 오랜 세월 흘러온 전통을 이렇게 제멋대로 바꿀 때 나타나는 후유증입니다. 이런 조치는 결국 활터에서는 두루마기를 입지 말라고 강요하는 일과 다름없습니다. 두루마기를 입으면 화살은 지금과 반대로 차야 합니다. 어떡하란 말입니까? 결국, 지금의 화살 차는 버릇은, 한복을 입지 말라는 주문입니다. 전통이 면면한 활터에서 전통을 지키지 못하도록 강제하는 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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