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진명
온깍지활쏘기학교 교두

[충청매일] 활터의 복장에 관한 논란이 뜨겁고, 또 말썽거리처럼 끊임없이 되풀이되곤 합니다. 우리가 언뜻 생각하는 활터의 전통성과 오늘날 한량들의 복장이 잘 안 어울리기 때문입니다. 요즘 대회에 가보면 사람들은 모두 흰색 상·하의에 운동화까지 하얗습니다. 대한궁도협회의 규정이 그런데, 그것이 시골구석의 활터까지 속속들이 영향을 미치는 것입니다.

이 복장에 대한 불만은 이렇습니다. 활쏘기가 전통 무예라고 하면서 뜬금없이 러닝셔츠 같은 옷을 입느냐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 대안으로 생활한복이나 전복 같은 옷으로 하자는 제안이 꾸준히 나옵니다. 하지만 전국대회를 주관하는 협회에서는 바꿀 뜻이 전혀 없습니다.

2017년에 충북의 한 활쏘기 대회에서 어떤 신사(新射)가 상·하의를 전통 한복으로 모두 갖춰 입고 나타났습니다. 대한궁도협회의 복장 규정은 상·하의 흰색이라고 했습니다. 그 원칙에 충실하게 한복 차림으로 나타난 것입니다. 그것을 본 임원과 심판들이 회의했습니다. 어떻게 됐을까요? 그 복장은 안 된다고 결론 났습니다. 이런 일은 복장 규정이 한창 강화되던 1990년대에도 한 번 있었는데, 마침 황학정에서 총무를 맡은 김집 접장의 제안으로 생활한복에 조끼까지 흰색으로 맞춰서 입었습니다. 전통을 반영한 활쏘기 복장으로는 아주 괜찮았던 디자인으로 오래 기억에 남습니다. 그런 복장이 1년을 가지 못하고 러닝셔츠 같은 옷으로 되돌아갔습니다.

활터의 복장이 이렇게 우스꽝스럽게 된 것은, 전국체전 때문입니다. 전국체육대회는 스포츠 경기이고, 여기서는 활도 전통성과는 상관없이 순수하게 스포츠로 인정하여 오직 승부를 다투는 경기로만 규정됩니다. 그래서 협회 임원들이 복장을 제안했는데, 그게 뜬금없이 정구복을 모델로 한 흰색 상·하의라고 규정된 것입니다. 그리고 그것은 박정희 대통령 각하의 뜻이라고, 당시 각 활터에 보내온 공문을 보면 적었습니다. 활을 쏘던 박 대통령이 한마디 하신 모양입니다.(‘활쏘기의 어제와 오늘’)

전국대회는 각 시도에서 대표를 뽑아서 하는 경기입니다. 그러자면 시도를 대표하는 선수 선발전을 치러야 합니다. 그 전초전이 바로 시도 체육대회입니다. 여기서도 대한체육회 소속인 궁도협회의 규정이 적용됩니다. 결국, 도민체전이나 시민체전에서도 흰색 상·하의를 입어야 합니다. 이렇게 하여 흰색 상·하의가 대회에 관철된 것이 1980년대입니다.

그런데 이상한 건 각 지역에서 주최하는 전국대회와 지역대회입니다. 이런 대회에서는 굳이 이 이상한 복장을 할 필요가 없을 것 같은데, 심지어 서너 곳 정도의 활터가 모여 놀이를 해도 전통과 거리가 먼 이 복장이 관철되곤 합니다. 친목을 도모하는 대회에서조차 그렇게 안 입으면 활을 쏘지 못하게 하는 것입니다.

이유는 간단합니다. 경기 방법을 대한궁도협회의 기준으로 진행한다는 안내 때문입니다. 그런데 경기방식을 그렇게 한다고 해서 복장까지 협회의 규정을 따라 한다는 것은 좀 이상합니다. 이런 걸 보면 오늘날 활터는 활량이 아니라 협회를 위해 존재하는 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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