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가

[충청매일] 시골집에 내려갔다. 이른 새벽 예초기의 요란한 소리가 아침을 깨운다. 베란다에 나가보니 이웃 밭 가장자리에 있는 산소 벌초를 하고 있다. 평소 돌보지 않아 너저분했던 산소다. 넝쿨풀이 덮여있어 작업이 힘들 거라 여겨왔다. 넝쿨에 걸려 기계가 멈춘다. 감긴 넝쿨을 뜯어내느라 애를 먹는다. 다시 기계를 가동하지만 이내 또 멈추고 만다. 뜯어내고 다시 깎고 반복이다.

작업을 서두르지 말고 우선 긴 풀의 윗부분을 먼저 깎고, 다시 아래쪽을 깎아야 한다. 그러면 걸리지 않고 쉽게 작업할 수 있다. 빨리 마치려고 한 번에 기계를 들이대니 저리 힘이 드는 것이다. 그 광경을 지켜보는 나로서는 답답하기만 하다. 한참을 실랑이를 벌이다 지쳤는지 기계를 내려놓고 물을 마시며 쉬고 있다. 힘도 두 배로 들고 연료도 두 배로 소모된다. 평소에 관리를 하지 않은 탓이다.

봄에서부터 관리를 시작해야 한다. 시기를 놓치면 관리하기 어려워 포기하게 된다. 4월이 되기 전 발아 억제제와 식물 전멸약을 살포하여 초기에 잡아주어야 한다. 그렇게 관리를 해나가면 잡초가 별로 발생하지 않아 벌초를 쉽게 할 수 있다. 바쁘다는 이유로 소홀히 하다 보면 쉬운 길도 어렵게 가게 된다. 우리가 살아가는 인생도 이와 이치가 같을 것이다.

건강은 건강할 때 지켜줘야 한다. 젊고 혈기왕성하다고 몸을 함부로 방치하면, 그때는 느끼지 못하지만 나이 들면 고생을 하게 된다. 이미 병들었을 때 고치려 하면 시간이 오래 걸리고 치유하기 어렵다. 젊어서부터 꾸준히 관리해온 사람은 늙어서도 건강을 유지하며 행복하게 살아간다. 건강뿐 아니라 삶의 과정도 그렇다. 차분히 하나하나 사전에 준비한 사람은 어떤 고난이 닥쳐도 어려움 없이 헤쳐 나간다. 그렇기에 항상 준비된 사람으로 살아야 하겠다.

가을이다. 인생도 가을이다. 가을이면 산소 벌초를 하고 깨끗한 마음으로 겨울을 맞이한다. 바쁘게 살아온 인생도 가을을 맞아 산소 벌초하듯, 마음을 정갈하게 깎고 정리하여 깨끗하고 건강한 삶을 유지해 나가야 한다. 지금 저곳에서 조상 산소를 벌초하고 있는 사람들도, 언젠가 같은 처지가 되어 후손들이 찾아와 벌초해 줄 것이다. 그러므로 나라는 생각으로 정성을 다해 관리가 이루어져야 하겠다.

태풍이 지나가면 큰 피해를 입게 되고, 복구 작업을 한다. 이제 몸은 태풍을 맞아 피해를 본 듯 많이 망가졌다. 복구해야 할 시기다. 마음을 정리하며 언제 어디서부터 복구할지를 계획하고, 대충이 아닌 완벽한 복구를 해주어야 하겠다. 그렇지 않으면 사소한 비바람에도 다시 피해를 보게 되는 불상사를 맞이하게 될 것이다. 가볍게 여기지 말고 신중하게 생각하며 완벽한 처리를 하며 살아야 하겠다.

잠시 생각에 잠겨있는 동안 기계 소리가 멈췄다. 힘들게 벌초를 마치고 깨끗해진 산소에 앉아 물을 마시며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이렇게 자손들이 찾아와 관리하는 산소는 아름답다. 그러나 아무도 찾지 않아 방치된 산소도 많다. 그래서 가족이 중요하다. 함께할 수 있는 가족. 가족 돌봄 속에서 함께 살아가는 넉넉한 인생이어야 한다. 매년 이맘때면 가족이 모여 산소를 관리하고, 나를 세워준 뿌리를 찾아 함께 어울리는 시간이 아름답게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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