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경대 경영학과

 

[충청매일] 한성백제는 백제의 683년(BC18~660년) 기간 중 BC18년부터 AD475년까지 493년간 하남위례성에 수도가 있었다. 475년 고구려 장수왕과의 전투에서 21대 개로왕이 전사하자 남하하여 공주 웅진성으로 수도를 옮겼다. 그러나 세월이 흘러 그 흔적이 없었으나 최근 땅속에서 유물이 발견되어 1500여년 전의 도시 일부가 복원되고 있다. 풍납토성, 몽촌토성, 석촌고분 등 유물이 발견된 곳에 한성백제 유적지를 복원 중이다.

송파 석촌동에는 수기의 고분들이 발견되었는데, 그 규모의 크기나 유물의 내용으로 보아 왕릉이 있던 곳으로 추정하고 있다. 석촌고분은 1980년대 중반까지는 무덤 위에 민가가 있었고 땅속에 조그마한 구멍이 나서 조사한 결과,  백제 시대 무덤군으로 확인되어 2015년에 복원되었다. 특히 3호 고분은 백제의 중흥기 왕인 근초고왕(346~375)의 무덤으로 추정하고 있다.

삼국사기 기록에 의하면, 한성은 북성(北城)과 남성(南城)으로 구성되었다고 했다. 1925년 대홍수 때 풍납동 일대에서 유물이 발견되었고, 1997년 아파트 건축을 하면서 대대적인 유물을 발견하면서 풍납토성이 복원되었다.

또한 몽촌토성은 1983년부터 1987년까지 학자들이 발굴조사를 통해 세상에 알려지게 되었다. 1984년 올림픽공원을 착공하면서 땅속은 덮어지고 몽촌토성은 복원되었다.

송파구청에서 발행된 송파소식지 9월호에 한성백제 고도가 소개되었다. 풍납토성에 있는 경당 역사공원이 한성백제의 왕궁이 있던 자리라고 한다. 그래서 그곳을 몇 번 답사하였다.

경당 역사공원에서 풍납동에 40여 년간 살고 있다는 주민 이기석(77) 선생을 만나 보았다. “여기가 백제의 왕궁터라는 것은 말도 안 된다. 한강 변에 수해가 나면 침수되던 곳인데, 어찌 왕궁터란 말인가? 아차산이 고구려 백제 신라의 각축장이었는데, 한강을 통하여 군수 물자가 보급되던 군대 주둔지에 불과하다”고 주장하였다.

반면 송파 소식지 567호(2020년 9월)에는 경당 역사공원은 “얼핏 보면 주택가 사이에 자리 잡은 공원처럼 보이지만, 이곳은 한성백제의 최대 유적지라고 불릴 만큼의 많은 유물이 발견된 곳이다. 백제 초기의 왕궁지로 유력하며, 제사 유구로 추정해 백제 역사를 규명하는 결정적 의미를 제공한다”라고 소개하고 있다.

그러나 현장을 가보면 고고학자의 보고보다는 주민의 말이 더 와닿는다. 백제의 왕궁을 이곳에 복원할 수는 있겠으나 왕궁터라고 주장하기엔 더 결정적인 자료가 나와야 할 것 같다.

문헌적으로 보면 하남 위례성은 한강 이남지역에 쌓은 성을 가르킨다. 북성(풍납토성)과 남성(몽촌토성)이 있으니 이곳 모두 왕궁이 있었을 가능성이 높다, 풍납토성은 아직 아파트와 주택가가 있고, 몽촌토성은 비어 있으니 왕궁을 복원한다면 몽촌토성의 왕궁부터 복원하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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