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가

[충청매일] 동네잔치가 있으면 아이들의 생일이다. 남정네들은 돼지를 잡아 고기는 따로 보관하고, 부속품으로 순대를 만든다. 순대와 간, 허파, 천엽 등을 가마솥에 넣고 푹 삶아 일 보는 사람들끼리 나눠 먹는다. 아주머니들은 마당에 철을 걸고 불을 때면서 전을 부친다. 고기 냄새와 전 부치는 기름 냄새가 동네를 감싸 안으면 꼬마들이 하나 둘 모여들기 시작 한다. 그러면 삶은 내장과 전을 앞자락에 나누어 준다. 받아들고 나가 허겁지겁 먹어 치우고 다시 대문 문턱을 넘어선다. 어린 시절 동네 모습이다.

어느 해 나는 세상의 문턱을 넘어 이 땅에 태어났다. 수많은 경쟁 상대들을 물리치고 당당히 태어났다. 아니 겨우 문턱을 넘어선 것이다. 기쁨의 눈물을 흘렸다. 그 후로도 세상의 높은 문턱을 겪으며 살았다. 중학교 입학부터 입시의 높은 문턱을 넘어서야만 했다. 취업의 문턱은 그보다 훨씬 높아서 거의 높이뛰기를 해야만 겨우 넘어설 수 있었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항상 문턱을 넘어서면서 살고 있다. 사찰에 가면 일주문이 있다. 사바세계에서 일주문 문턱을 넘어서면 성지의 세계에 진입한다. 불국토다. 신들의 영역에서 진리의 경지로 나아간다. 다시 불국토를 벗어나 일주문 문턱을 넘어서면 현실의 세계에 도달한다. 일상으로 돌아온 것이다. 성당과 교회도 문턱을 넘어서면 신의 성역이다. 그곳에서 기도하고 찬양한다. 다시 문턱을 넘어 나오면 일상으로 복귀한다. 이와 같이 문턱은 세상과 다른 세계를 구별 짓는 경계라 볼 수 있다.

인류는 지구를 넘어 우주의 문턱을 넘어섰다. 달을 보며 계수나무 아래서 토끼가 방아를 찧고 있다고 믿고 살아왔는데, 우주선이 달나라에 착륙하여 발자국을 남기고 돌아왔다. 이뿐만 아니라 화성에까지 우주선이 문턱을 넘어 드나든다. 우주 정거장을 건설해놓고 민간 우주선 비행사가 문턱을 넘어갔다가 무사히 귀환하기까지 했다. 지구에 한정되었던 생활 영역을 우주로 확장해 나가는 시대가 열리고 있다. 인간의 한계는 어디까지 일까. 우주의 문턱을 자유자재로 넘나든다.

생을 마감하고 죽음의 문턱을 넘는다. 넘어서면 돌아올 수 없는 문턱이다, 그러나 우주를 개발하듯 신의 세계를 조금만 연구한다면 생과 사의 단절된 문턱도 넘나들 수 있게 되는 날이 오지 않을까 조심스럽게 점쳐 본다. 잔혹하다는 생각도 든다. 하지만 진리의 세상을 조금만 더 파고든다면 가능성도 있다고 본다. 신의 영역을 침범하는 것이 아닌 신의 세계에 존재할지 모르는 문턱을 넘어갔다 귀환하는 비행사가 되는 것이다.

잔칫집에서 앞자락에 싸 날랐던 고기와 전으로 옷이 반질 반질 하다. 그래도 신나게 문턱을 넘어갔다 오곤 한다. 다른 날은 들어설 수 없는 문턱이다. 오늘의 특권을 이용해 열심히 드나든다. 우리들이 사는 것도 기회가 주어질 때 치고 넘어야 한다. 눈치 보며 망설이면 맛있는 고기와 기름 줄줄 흐르는 맛좋은 전을 놓치고 후회하며 살아야 한다. 기회는 주어질 때 과감히 잡아야 할 것 같다. 아무리 높은 문턱이라 할지라도 과감히 뛰어 넘어야 한다. 그것만이 인생을 후회 없이 살아가는 방법일 것이다.

넘어서자 오늘의 문턱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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