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전 번역가

[충청매일] 기원전 697년, 춘추시대는 권력을 쫓는 이들의 배신과 음모가 가득 찬 시기였다. 정(鄭)나라 여공은 강력한 신하 제중을 제거하려다 실패하고 도리어 자리에서 쫓겨났다. 얼마 후 송나라의 도움으로 간신히 국경지역에 자리를 잡았다. 한편 제중은 이전에 송나라의 위협으로 인해 위나라로 망명한 소공을 모셔와 군주에 앉혔다.

즉위한 소공은 조정 대신들 중에 손볼 신하가 하나 있었다. 자신이 태자였을 때부터 미워하던 신하 고거미였다. 그해 늦여름 소공이 신하들과 사냥을 나갔다. 이때 고거미도 수행했다. 소공이 사냥감을 쫓아 말을 달리다가 그만 인적이 없는 야외에 이르렀다. 그때 고거미가 소공과 같이 있었다. 말 위에서 소공이 등을 보이며 잠시 땀을 닦고 있었다. 그 순간 고거미가 활을 쏘아 소공을 죽였다. 소공이 자신을 죽이려는 것을 눈치 챈 고거미가 먼저 손을 쓴 것이었다.

이에 제중은 소공의 동생 자미를 군주로 세웠다. 하지만 자미는 제나라 양공이 소집한 모임에 갔다가 양공에게 무참히 죽임을 당했다. 그러자 제중은 자미의 동생 영을 군주로 세웠다. 영이 제위 12년 무렵에 신하 제중이 죽었다. 그러자 이 틈을 노려 국경지역에 머물고 있던 여공이 무사들을 시켜 정나라의 대부 보가를 사로잡아왔다. 여공이 보가에게 말했다.

“내가 다시 정나라 조정으로 돌아가고 싶소. 그러니 그대가 힘을 좀 써주시오!”

그러자 보가가 대답했다.

“저를 살려주신다면 반드시 여공을 다시 받들도록 하겠습니다.”

이에 여공이 보가를 바로 풀어주었다. 한 달 후에 보가가 영을 살해하고 영의 어린 두 아들마저 잔혹하게 죽였다. 그리고 여공을 맞아들였다. 여공은 다시 제후에 오르자 가장 먼저 자신의 큰아버지 원(原)을 불렀다. 그리고 따져 물었다

“이전에 내가 도망쳐 국경지역에 살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큰아버지는 어찌하여 나를 불러들일 생각을 조금도 하지 않으신 겁니까. 너무하신 것 아닙니까?”

이에 큰아버지 원이 대답하였다.

“신하된 사람이 어찌 두 마음을 품고 군주를 모실 수 있겠습니까. 그럴 수는 없는 일입니다. 그것이 죄라면 저는 그 죄를 분명히 알고 있습니다.”

원은 돌아가 그날 밤 자결하고 말았다. 다음날 여공이 대부 보가를 불러들였다.

“그대는 신하된 자로써 어찌 두 마음을 품고 나를 섬기려 하는가?”

이에 보가가 크게 탄식하며 말했다.

“아! 큰 은혜는 보답 받지 못한다고 하는데, 바로 이걸 두고 하는 말이로구나!”

여공이 곧바로 군사를 시켜 성문 밖에서 보가의 목을 베었다. 이는 사마천의 ‘사기세가(史記世家)’에 있는 이야기이다.

인면수심(人面獸心)이란 얼굴은 사람이나 마음은 야수와 같다는 뜻이다. 은혜를 모르고 도리어 흉악하게 구는 사람을 이르는 말로 쓰인다. 힘들 때 당신을 도와준 사람, 외로울 때 당신을 위로해준 사람, 아플 때 당신을 간호해준 사람을 잊는다면 그건 사람이 아닌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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