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전 번역가

[충청매일] 중대한 인생의 갈림길에 닥쳤을 때 아버지와 남편 중에 하나를 선택하라고 하면 당신은 누구를 선택할 것인가? 기원전 697년 정(鄭)나라 장공이 죽자 태자 홀이 제후의 자리를 이었다. 이가 소공이다. 하지만 소공의 제위는 순탄하지 않았다. 죽은 장공에게는 송나라 미인에게서 얻은 둘째아들 돌이 있었다. 그 무렵 송나라는 정나라보다 땅도 넓고 군사력도 강했다. 태자 홀이 제후에 올랐다는 말에 송나라에서 크게 분노하였다. 몰래 병사를 보내 정나라의 재상 제중을 사로잡아왔다.

“당장에 공자 돌을 정나라의 제후로 세우도록 하라. 그렇지 않으면 네 놈의 목숨은 온존치 못할 것이다.”

제중은 송나라의 협박이 두려워 결국 요구를 받아들였다. 이어 송나라 군대의 호위를 받으며 귀국하였다. 소공이 이 소식을 듣고 위태롭다고 여겨 급히 위(衛)나라로 달아났다. 그러자 제중이 주도하여 공자 돌을 제후로 세웠다. 이가 곧 여공(厲公)이다. 하지만 여공은 실권이 별로 없었다. 신하 제중이 정나라의 주요 권력을 움켜쥐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따라서 제중은 군주보다 높은 신하였던 것이다. 그러자 여공은 하루하루가 초조하고 불안하기만 했다. 이러다가 어느 날 소리 소문 없이 폐위될 것만 같았다. 그래서 여공은 미리 손을 쓰기로 했다.

하루는 평소 총애하는 신하 옹규(雍糾)를 불러 말했다. 옹규는 그 무렵 제중의 사위였다. 하지만 신하들 중에 누구보다 여공을 잘 따라 신임이 아주 높았다.

“지금 제중의 권한이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있으니 이를 어찌하면 좋겠는가? 내가 믿을 것이라고는 옹규 그대뿐이다. 그러니 은밀하게 제중을 처치하도록 하라!”

밀명이었다. 그러니 함부로 입에 담기 두려운 일이었다. 그래서 옹규는 가만히 때를 기다렸다. 제중을 제거하기만 하면 자신이 재상에 오른다는 생각에 행동이 치밀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술을 마시고 아내와 정을 나누다가 그만 술기운에 자신도 모르게 밀명을 털어놓고 말았다.

“군주께서 내게 장인을 죽이라는 명을 내렸소. 하지만 언제인지는 나도 모르오.”

다음날 옹규의 아내는 아침 일찍 친정에 도착했다. 급히 어머니에게 물었다.

“어머니! 내게 있어 아버지와 남편 중에 어느 쪽이 더 중합니까?”

그러자 어머니가 대답하였다.

“아버지는 너에게 비록 엄하긴 했으나 세상에 단 한 분뿐이다. 하지만 세상의 모든 남자는 언제라도 너의 남편이 될 수 있다.”

이에 옹규의 아내가 주저하지 않고 바로 아버지를 찾아갔다. 그리고 전날 남편에게서 들은 이야기를 모두 고자질하였다. 제중이 이를 듣고 격노하였다. 당장 사람들을 시켜 옹규를 잡아오도록 했다. 옹규는 잡혀 와서 제중의 마당에서 변명 한 마디 해보지 못하고 단칼에 목이 떨어져나갔다. 이어 여공은 변방으로 쫓겨났고 이전에 달아난 소공이 귀국하여 제위에 올랐다. 이는 ‘사기세가’에 있는 이야기이다.

앙사부모(仰事父母)란 우러러 부모를 섬긴다는 뜻이다. 유난히 비 피해가 많은 해이다. 바쁘더라도 고향에 계신 부모님께 안부를 묻고 작은 힘이라도 보태야 하는 것이 자식의 도리이다.

SNS 기사보내기
기사제보
저작권자 © 충청매일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