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북연구원 연구위원

[충청매일] 몇 년 전, 자신이 소중하다고 생각하는 10가지를 적게 한 후 하나씩 지워나가는 실험을 소개한 영상을 본 적이 있다. 집, 건강, 가족, 회사, 강아지 등 실험에 참가한 사람들의 소중한 것들은 다양했다. 진행자가 10가지 중 없어도 살아갈 수 있는 것 3개를 지우라고 하고, 다시 또 3개를 지우라고 했다. 참가자들은 고민되지만 즐거운 표정으로 하나씩 지웠다. 그런데 남은 것이 적어질수록 사람들의 표정이 심각하게 변했다. 지우기를 취소했다 다시 지우는 모습이 많아졌다. 이제 마지막 남은 한 가지, 이것마저 지우라고 했더니 심각한 표정에 눈물을 흘리는 사람, 지우기를 포기한 사람들이 나타났다. 마지막 남은 것은 무엇이었을까?

자신이 인생에서 소중하게 여기는 것은 사람마다 다르다. 인생을 살아가면서 소중하고 가치 있는 일에만 전념하거나 그것을 항상 우선순위에 두면서 살아갈 수 있다면, 그 인생은 성공했다고 평가해도 되지 않을까? 마지막 남은 한 가지는 대부분 가족이었다. 어쩌면 당연하고 평범한 대답, ‘가족’이라는 단어 앞에서 사람들은 왜 심각했고, 눈물을 흘렸으며, 망설였을까?

인생에서 가장 가치가 있는 것이 무엇이냐는 설문조사에서 연 소득 8천만원 이상의 고소득층의 1위는 자신의 건강이었다고 한다. 그 다음이 가족이었다. 건강과 가족을 가치 있고 중요하게 생각하면서도 응답자의 55%는 주말에도 출근하고, 67%는 휴일에도 업무와 관련된 일을 하고 있다고 답했다. 10대들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에서는 경제적 풍요가 가장 높았다. 즐거운 삶, 화목한 가정이 그 뒤를 이뤘다.

이 두 조사가 의미하는 것은 무엇일까? 필자도 스스로에게 물어본다. 그런데 대답과 실제 생활은 큰 차이를 보이고 있다. 마음속에 큰 바윗덩어리가 들어앉은 기분이다. 몰라서 실천하지 못하는 것이 아니라 알면서도 실천하지 못하는 것에 대한 자괴감이 들기도 한다.

자신이 가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을 스스로 지키지 못하는 삶, 그렇게 얻은 성공이 진짜 성공일까? 우리는 이 원초적 질문에 쉽게 답하지 못한다. 유시민 작가는 그의 저서 ‘어떻게 살 것인가’에서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자기 결정권을 행사하는 일이다. 자기 결정권이란 스스로 설계한 삶을 옳다고 믿는 방식으로 살아가려는 의지이며 권리이다.”라고 말한다. 필자도 이 말에 적극 동의는 하지만, 실제로 그렇게 살아가지 못하고 있다.

며칠 전, 아내가 아이들에게 ‘아빠의 좋은 점’과 ‘아빠의 고쳐야 할 점’을 써 보라고 했다. 몇 년 전에도 했던 행사인데, 어떻게 바뀌었는지 궁금했다. 그동안 자녀들에게 나의 삶은 어떻게 평가받고 있는지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런데, 고쳐야 할 점 중에 가장 우선순위가 야근으로 나왔다. 대화 도중 잔다는 불만도 나왔다. 이 두 가지는 패션 감각이 떨어지고, 방귀를 잘 뀐다는 단점들처럼 웃고 넘어갈 수 없었다. 필자 스스로 옳다고 믿는 삶의 방식과는 다른 것이었기에 마음이 무거웠다. 물리적으로 일이 많아서 그런 것도 있지만, 습관적 야근도 적지 않았다. 낮에는 집중이 안 된다는 핑계로 야근이 일상이 되었다. 10가지 중 가장 마지막에 가족을 남겨두고 실험 참가자들이 눈물을 흘린 것처럼 우리도 어쩌면 그런 후회하는 삶을 살아가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오늘, 점심을 사달라고 찾아온 두 딸과의 데이트가 더없이 행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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