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진명
온깍지활쏘기학교 교두

[충청매일] ‘조선의 궁술’이 우리 활쏘기의 기준이 되어야 한다고 했습니다. ‘조선의 궁술’은 나라가 망하고 일제의 강점이 자리 잡아가던 1929년에 나온 책입니다. 망한 나라의 유민이 된 우리 선배들이 위기의식을 느끼고, 우리의 모든 활쏘기를 집약한 성전이고 경전입니다. 이것이 우리 활쏘기의 기준이 되어야 함은 당연한 일입니다.

그렇다면 이런 기준을 정하고 오늘날의 활터를 보면 어떨까요? ‘조선의 궁술’에는 없던 것이 무엇이고, 그것이 활터의 앞날에 미치는 영향은 어떨까요?

가장 먼저 눈에 띄는 변화는 사법입니다. 사법은 활쏘기 그 자체입니다. 그런데도 사법에서 가장 큰 변화가 나타났습니다.

가장 큰 차이점은 깍짓손인데, ‘조선의 궁술’에서는 깍짓손을 “맹렬하게 뿌려라.”고 합니다. 구사들은 이런 비유도 씁니다. ‘숯불을 집은 듯이’, ‘거머리를 잡아서 팽개치듯이’.

그렇지만 요즘은 이렇게 쏘는 사람이 별로 없습니다. 이것이 조선의 궁술’에서 말한 전통 사법임을 알고 그렇게 바꾸어도 주변 사람의 핀잔과 핍박을 이기지 못하고 원래 상태로 돌아갑니다.

양궁처럼 뒷손을 그 자리에 그대로 두죠. 앞서 살펴보았듯이 이런 동작을 정당화시켜준 것이 1960년대 도입된 양궁입니다. 양궁에서 그렇게 쏘니까, 그렇게 쏘는 것도 괜찮다는 생각을 은근히 하기에 이른 거죠.

이런 변화가 일어난 데에는 몇 가지 원인이 있습니다. 양궁이 시범을 보였다는 것도 그중의 하나지만, 더 큰 원인은 1970년대 개량궁의 등장입니다.

원래 우리 활은 각궁입니다. 가운데 나무로 된 활채의 앞뒤에 무소뿔과 소 심줄을 대서 탄력을 보강한 것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이렇게 복잡한 공정을 거쳐서 만들어진 각궁이 다루기가 쉽지 않다는 것입니다. 활을 얹어서(시위 거는 것을 말함) 화롯불에 쪼이면서 위아래 균형을 맞추어야 합니다. 그러지 않고 대충 얹어 쐈다가는 활이 홱 뒤집힙니다. 각궁은 뒤집히면 똑 부러집니다. 비싼 각궁이 박살 나는 것은 순식간입니다.

그래서 활터에는 각궁을 얹어주는 전문가를 따로 두기도 했습니다. 활터에서 말하는 사범이 원래 이런 존재였습니다.

각궁과 개량궁은 쏴보면 성질이 매우 다릅니다. 가장 다른 점은 다 당겼을 때 느껴집니다. 각궁은 활이 일단 꺾이기 시작하면 힘이 별로 안 들지만, 개량궁은 끝으로 가면 갈수록 힘이 점점 더 듭니다.

그래서 깍짓손을 채서 활을 쏘기가 참 어렵습니다. 그러다 보니 줌손을 밀어서 발시하게 됩니다. 깍짓손을 제치기가 힘드니 양궁처럼 제 자리에 놓고 줌을 밀어서 쏘게 된 겁니다.

전통 사법을 구사하는 한량은 현재 극소수입니다. 신념을 갖고 그렇게 하는 사람은 온깍지궁사회 회원이나, 온깍지활쏘기학교 출신 한량들과 관련된, 몇몇에 지나지 않습니다. 5천년 전통을 이어온 ‘조선의 궁술’ 속 사법은 이렇게 달라졌습니다. ‘전통’이 무색해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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