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가

 

[충청매일] 별이 빛나는 밤, 유성이 밤톨 떨어지듯 흘러내린다. 갈색 나뭇잎이 바람에 몸을 맡기고 이리저리 뒹글고 있다. 이것이 그 생의 시작인지 끝인지 살펴보아야겠다.

마른나무 가지에 뾰족하게 돋아난 눈, 혹독한 겨울을 견뎌냈다. 봄비가 내리고 바람이 간질이자 서서히 기지개를 켠다. 장수가 갑옷을 벗어내듯 한 겹 껍질을 벗어내고 새싹을 돋운다. 눈에서 싹으로 변화된 순간이다.

새싹이 돋아나자 세상이 보인다. 하늘, 산, 그리고 나를 지탱해주는 나무. 모든 것들이 다가선다. 이제 나도 그들과 세상의 일원이 되어 함께 살아가게 된 것이다. 뿌리가 없는 새와 벌 나비가 날아온다. 한곳에 머물러 있지 않고 자유자재로 가고 싶은 곳을 마음대로 비행하는 자유로운 영혼들이다. 그들이 부럽다. 나도 저들처럼 자유롭게 날아보고 싶다는 충동이 일었다. 어쨌든 이제 나도 저들과 한 무리가 된 것이다.

이름이 또 바뀌었다. 눈, 싹에서 나뭇잎으로 바뀌었다. 모양과 색이 바뀌고 내 몸에는 잎맥이라는 혈관도 만들어졌다. 내가 나를 봐도 멋있게 느껴진다. 비가 내리는 날, 비사이로 피할 수 있었는데 이젠 몸집이 커져서 온 몸으로 맞아야 한다. 갑자기 몸이 근질근질 하다. 왜인가 했더니 벌레가 기어 올라오고 있다. 징그럽다. 내 몸을 파먹을 기세다. 이때 다행히 새가 날아와 벌레를 물고 간다. 눈이나 새싹 시절엔 이런 걱정이 없었는데 자라나다보니 점점 걱정거리가 늘어난다.

자랄 대로 자란 우리는 힘을 합쳐 나뭇가지 전체를 덮었다. 하늘과 땅을 분리해 버린 것이다. 그늘을 찾는 이들에게 휴식공간을 제공 해주었다. 보람을 느낀다. 비를 피하려고 찾아든 이들에겐 우산도 되어 주었다. 나도 사회의 일원으로 역할을 한 것이다. 내심 뿌듯했다.

주변이 소란스럽다. 왜인가 하고 내려다보니 단풍놀이 나온 관광객들이다. 내가 예쁘다며 나를 배경삼아 셔터를 누른다. 처음 며칠은 반가운 마음에 웃으며 포즈를 취해주고 했었다. 끝이 없다. 나중엔 대충 자세만 취해 주었다. 하루 이틀도 아니고, 그렇다고 돈이 생기는 건 더욱 아닌데 약간 짜증이 나기도 했다.

갑자기 바람이 차게 느껴진다. 나를 찾던 발걸음도 뜸 해졌다. 몸의 색도 보기 흉하게 퇴색되어 있다. 갑자기 외롭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참 잘나갈 때 좀 더 그들과 즐기고 잘 대해줄걸 후회가 들었다.

후회해도 소용없다. 그동안을 함께했던 친구들이 하나 둘 어디론가 떠나간다. 이재 얼마 남지 않았다. 나도 위기감을 느낀다. 떨어진 나뭇잎들은 바람타고 땅에서 둥글고 있다. 찾아주는 이들이 있을 때 잘할 걸 후회막급이다. 하지만 늦었다. 저들을 따라 어디론가 가야만 한다.

‘툭’하고 매달렸던 나뭇가지로부터 떨어져 나왔다. 드디어 날았다. 자유롭게 비행하던 새와 벌, 나비처럼 드디어 나도 날았다. 내 가는 곳 어디인지 모르지만 원을 풀었다. 해보고 싶었던 모든 것들을 다해보고 이제 나만의 멀고 먼 또 다른 세상을 향해 정처 없이 날아간다. 모든 나뭇잎들이 그러 했듯이 나도 그들의 뒤를 따라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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