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
청주민예총 사무국장

[충청매일] 늦은 오후부터 거미줄을 치느라 분주하다. 제법 넓은 지역을 택했으니 저 거미는 지분이 많은 셈이다. 건물 처마부터 파라솔 끝으로 연결된 축이 제법 견고하다. 공중그네를 타듯 넘나드는 거미의 곡예는 저녁나절이 다 되어서야 끝이 났다. 희미한 가로등이 바로 앞에 있으니 불빛으로 날아드는 먹잇감이 제법 있을 것이나, 파라솔이 조금이라도 돌아가거나 사람의 실수로 툭, 치는 날에는 거미줄이 남아 날일 없어 보인다. 역세권인 줄 알고 집을 샀더니 너무 시끄러워 살 수 없는 셈이다. 그렇다고 집을 세놓거나 매매하지 않는다. 거미는 제힘으로 집을 짓고 한순간에 집이 없어진 데도 절망하지 않는다.

청주 아파트를 팔았다고 난리가 났다. 청주 사람이니 청주에 집이 있는 것은 당연한데, 서울에서 일을 하고 있으니 서울에 산다. 그러니 서울에도 집이 있다. 만약, 서울집도 사는 집이 아니라면 문제가 되겠지만, 집을 팔아야 한다면, 살고 있는 집을 팔 수는 없는 일 아닌가. 청주와 서울의 집값이 천지 차이고 때마침 청주에 부동산 투기를 방지하기 위한 특단의 조치가 취해진 시점이 문제라면 문제일까.

거미줄만 넓지 영 허당이다. 쪼그만 날벌레 몇 마리 걸려 있으나 저 걸 어찌 먹는다 말인가. 난감하긴 쳐다보는 나도 마찬가지라서 조언이라도 해주고 싶은 마음이다. 벽에 붙어 있는 조명등 아래로 작은 살림을 시작한 집엔 촘촘하게 벌레들이 붙어 있다. 죽자고 몰려든 손님들이 번호표를 뽑고 대기 중이다. 배도 채웠으니 집을 팔 생각은 없는지 점잖게 물어보았지만, 집은 팔고 사는 게 아니라고 단호하다.

살지도 않는데 집만 소유하고 있으면 시민이 되는가. 하긴 고향도 아니고 학교도 다른 지역인, 연고도 없는 이를 시민의 대표로 선출한 적이 한두 번 일인가. 그렇다면 부동산 투기를 위해 서울 등에서 청주 아파트를 사들이고 있는 저들도 다 시민이다. 세금 한 푼 내지 않아도, 집 앞 슈퍼에서 과자 한 봉지 사 먹지 않아도 어엿한 시민이다. 이런 논리라면 청주는 금방 백만 도시가 될 것이다.

소문이 났는지 방 한 칸 마련하기 위해 몰려든 이주민이 늘어나고 있다. 정주(定住)의 꿈을 꾸는 이들을 쫓아낼 수 없는 일이라서 지켜보는 중이다. 화분 사이에도 유리창 구석진 곳에도 호기롭게 실내에 자리 잡은 이도 있다. 빗자루로 쓸어버리면 되는 일이지만, 딱히 해로운 집도 아니고 오히려 귀찮게 구는 벌레도 잡아주니 서로 좋은 일 아니겠는가. 그렇다고 세를 내라고 할 수도 없고 권리금 장사나 해보자고 설득할 수도 없는 일이다.

언제부턴가 집이 집의 기능을 잃어가고 있다. 날로 높아져만 가는 아파트는 부의 상징이 되고 있으며, 내 집 마련이 생의 목표가 되고 이사는 필수가 되었다. 힘든 하루를 마치고 집으로 향하는 이에게 집은 위로의 장소이고, 밥상에 둘러앉은 식구들에게는 비바람을 막아주는 행복한 안식처다. 한데 모여 밥 먹는 일이 어려운 세상이 되다 보니 식구가 되지 못하고 하나의 지붕을 공유한 공동체만 남았다. 집이 투기의 목적이 되고 부의 상징이 되면서 도시의 아이들은 유년의 집이 없다.

부서지고 구멍 뚫린 집을 보수하느라 분주하다. 아직 오후의 해는 강렬하고 밤이 오려면 멀었건만, 거미는 제 몸에서 집을 토해내느라 내게 눈길 한 번 주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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