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가

[충청매일] 갑자기 폭우가 쏟아진다. 빗물이 도로 가득 급하게 흘러내려간다.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다. 그렇게 급하게 흐르는 빗물만큼 빠르게 흐르는 것이 세월이다. 천천히 숨고르기를 하며 여유롭게 흐르면 좋으련만 급하게 흘러가 버린다. 한번 흘러간 물은 돌아오지를 않는다. 세월도 흘러가면 다시 오는 법이 없다. 그렇듯 무정한 게 세월이다.

어린 시절에는 세월이 빨리 흐르기를 원했었다. 성년이 되어 미성년자의 딱지를 떼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래야 하고 싶은 것들을 제약받지 않고 마음대로 할 수 있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중년이 되었을 때도 빠르게 흐르는 세월을 원했었다. 하루하루가 너무 힘들었기 때문이었다. 반복되는 일상에서 하루 속히 벗어나고픈 마음에서였다. 그때의 생각은 얼른 세월이 흘러 퇴직 후 여유로운 삶을 즐기며 살아야겠다는 마음뿐이었다. 참으로 어리석은 생각이었다는 것을 이제 비로소 알게 됐다. 후회해도 소용없는 일이다.

드디어 그렇게 원했던 퇴직을 하게 됐다. 여유로운 인생을 즐겨보려는 생각으로 마음이 들뜬다. 가족과 여행도 즐겨보고, 시골 농토도 가꿔보고, 전국을 돌아다니며 맛집을 찾아 입을 즐겁게 하며 살았다. 행복했다. 일하고 싶으면 밭에 나가 일하고, 쉬고 싶으면 시원한 냇가에서 씻고 낮잠을 즐기기도 했다. 신선이 따로 없다. 내가 곧 신선이 되어 있었다.

그땐 도끼자루가 썩고 있는지를 몰랐다. 세월이 겉잡을 수 없이 빠르게 흐르고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없었다. 어느새 나이가 들어 할아버지, 노인, 어르신 소리를 듣게 됐다. 흐르는 물과 같이 빠른 정도가 아니라 폭포에서 거침없이 떨어지는 폭포수만큼이나 빨리 흐르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폭포는 쉼 없이 물을 쏟아 내린다. 공원의 분수처럼 쉬었다 쏘아올리고 하면 좋으련만 계속 흘려 내린다. 세월만큼이나 빠르게.

또 한해가 시작된다. 봄, 여름, 가을, 그리고 겨울. 흘러간다. 잡아두지 못하고 속수무책으로 보낸다. 오늘은 어제가 되고, 올해가 작년이 된다. 내년을 맞이하기가 두렵다. 인생에 쉼표는 없을까? 쉬지 않고 계속 흐르기만 하는 게 인생이고 세월인가? 쉬는 시간이 필요한데 틈을 주지 않고 재촉한다.

윤달이 들은 해에는 절기가 빠르다. 그래서 곡식이나 과일이 익는 시기가 너무 늦어져 이를 조절하려고 윤달을 두어 시기를 조절한다. 이와 같이 윤년을 도입해 세월을 조절할 수 있다면, 우리네 인생도 더디게 익어 갈 것 같은데 하는 생각을 해본다.

인생에도 윤달처럼 윤년이 있었으면 좋겠다는 마음이다. 가끔 한 번씩 윤년을 만들어 한해씩 쉬어가며 나이를 들게 했으면 좋겠다. 어린 시절 생각에는 반하는 것이지만 현재의 마음은 그렇다. 무엇이 그리 급한지 빠르게만 흘러간다. 쏟아지던 비도 그쳐 도로에 흐르던 물이 사라졌듯이, 세월도 가끔 한 번씩 비가 그치듯 멈추었다 흘렀으면 좋겠다.

가거라 세월아. 나는 윤달을 즐기며 쉬었다 가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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