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전 번역가

[충청매일] 기원전 330년, 상앙(商鞅)은 본래 위(衛)나라의 귀족 출신이다. 젊은 시절에 위(魏)나라의 재상 공숙좌 문하에 들어가 학문과 실무를 배웠다. 재능과 지혜가 뛰어낫지만 위왕에게 등용되지 못했다. 그때 마침 서쪽 강대국 진(秦)나라에서 스물한 살의 젊은 임금 효공이 즉위하였다. 그는 천하의 인재를 얻기 위해 이른바 ‘초현령(招賢令)’을 내렸다.

“천하 누구든지 진나라를 강하게 만들 수 있는 계책을 내놓는 자에게는 높은 관직과 후한 녹봉을 내리겠다.”

이 소식을 듣고 상앙이 진나라로 떠났다. 가서 효공을 알현하고 법치의 정치를 설명하였다. 효공이 이를 듣고 크게 기뻐하였다. 상앙은 곧바로 진나라의 법을 담당하는 좌서장이란 요직에 올랐다. 얼마 후 재상에 올라 진나라를 개혁하기 위한 신법을 만들었다. 하지만 기존 기득권자들이 일제히 들고 일어나 강하게 저항하였다.

이때 공교롭게도 태자가 법을 어기는 일이 생겼다. 태자는 다음 군주에 오를 분이니 직접 처벌하지 못하고 대신 태자의 사부들이 형벌을 대신 받았다. 이 소문이 알려지자 권력자나 백성이나 감히 법을 어기는 이가 없었다. 이후로 법을 어긴 자는 권세가이든 일반인이든 엄하게 처리했다.

상앙이 법을 시행하고 3년이 지나자 길에 떨어진 물건을 주워 가는 사람이 없을 정도였다. 하지만 처벌이 강하니 권세가와 대부들이 은밀히 저항하기 시작했다. 뿐만 아니라 일반 백성들도 법이 너무 가혹하여 나라를 원망하는 이들이 많았다. 이는 법으로 나라의 기틀을 만들긴 하였지만 백성을 살피는 은덕이 없어 그저 무력으로 정치하는 것과 다름없었다.

8년 후 상앙을 그토록 신임하던 효공이 죽고 태자가 즉위하였다. 이가 혜왕이다. 상앙은 이전의 일로 혜왕을 두려워하여 당장 자리에서 물러났다. 그리고 고향인 위나라로 돌아갈 것을 요청했다. 그러자 원한을 갖고 있던 대부들이 혜왕에게 일제히 상소를 올렸다.

“지금 진나라는 부인이나 어린이들까지도 상앙의 법을 말하고 있습니다. 도리어 왕의 명령은 가볍게 여기고 있으니 이는 상앙이 왕이고 왕은 그 신하인 셈입니다. 이래서는 나라의 기강이 바로 설 수 없습니다. 대왕께서는 나라의 앞날을 위해 부디 지난 일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어느 날 밤 상앙이 위나라로 달아나려다가 실패하고 사로잡혔다. 혜왕이 그 무렵 가장 잔인한 형벌인 사지를 찢어 죽이는 거열형에 처했다. 그러자 진나라 백성 모두가 환호하였고 어느 누구도 상앙을 불쌍히 여기는 이가 없었다. 이는 사마천의 ‘사기열전(史記列傳)’에 있는 이야기이다.

밀운불우(密雲不雨)란 구름이 잔뜩 끼어 있는데 도무지 비가 오지 않는다는 뜻이다. 나라의 정치가 시작만 있고 끝이 없어 아래 백성에게는 아무런 은덕이 전해지지 않는다는 의미로 쓰인다. 21대 국회는 과연 한국정치의 폐단과 악습을 개혁할 수 있을까? 집권여당은 6월에 그 가능성을 분명히 보여주어야 한다. 허튼 짓 하지 말고 그저 국민만 보고 나아가기 바란다.

SNS 기사보내기
기사제보
저작권자 © 충청매일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