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진명
온깍지활쏘기학교 교두

[충청매일] 국궁은 어떨까요? 양궁에서 세계를 제패할 히든카드로 쓴 국궁 사법의 특징이 활터에서는 잘 지켜지고 있을까요? 답은 “전혀 그렇지 않다!”입니다. 오히려 그 반대입니다. 국궁이 양궁을 닮아서 모두 양궁식 사법으로 개종을 했습니다. 종교를 바꾸는 것을 ‘개종’이라고 하는데, 정말 활터의 사법 변화는 단순한 편의가 아니라 종교상의 개종이라고 할 만큼 철저하고 광범위합니다.

양궁하는 분들이 활터에 올라가서 국궁 동작(궁체)을 보면 깜짝 놀랄 것입니다. 국궁장에서 양궁을 하는 사람들을 발견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깍짓손 동작을 말하는 것입니다. 요즘 국궁인들은 양궁처럼 깍짓손을 제 자리에서 똑 떼고 맙니다. 옛날에 발여호미(發如虎尾)라고 해서 깍짓손을 발시 순간에 범의 꼬리처럼 쭉 내뻗는다고 했습니다. 활터에서는 이렇게 쏘는 사람을 찾아보기 힘듭니다.

저는 이 영향을 양궁 탓이라고 봅니다. 원래 깍짓손을 크게 떼는 동작은 불안정을 유발합니다. 흔들림 때문에 시수가 안 좋습니다. 그래서 깍짓손의 동작을 얌전하고 작게 뗄 생각을 하였겠는데, 그 모범 사례를 현실에서 양궁이 보여준 것입니다. 그래서 양궁처럼 깍짓손을 떼 봤는데, 깍짓손을 크게 뗄 때 생겼던 여려 문제들이 해결된 것입니다. 그래서 양궁 동작은 순식간에 활터를 점령합니다.(‘활쏘기의 어제와 오늘’)

이렇게 깍짓손을 양궁처럼 그 자리에서 떼는 동작을 국궁에서는 ‘반깍지’라고 합니다. 반면에 옛날처럼 깍짓손을 활짝 다 펼치는 동작을 ‘온깍지’라고 합니다.(‘활쏘기의 지름길’) 해방 전후에 집궁한 분들을 만나서 얘기 들어보면 옛날에는 깍짓손을 모두 온깍지로 떼었다고 이구동성으로 말합니다. 그런데 어느 순간 활터에서 사람들이 반깍지로 떼고 있는 겁니다. 자신들이 왜 그렇게 되었는지 의문도 품지 않고 그렇게 쏘고 있습니다. 1970년대부터 불과 30년만에 벌어진 일입니다.

정리하자면 이렇습니다. 사법에서 양궁은 국궁을 따라 했고, 국궁은 양궁을 따라 했다! 겉보기에도 확연히 드러나는 사법의 모습이 바로 이런 것입니다. 국궁이 양궁에 미친 영향은 언뜻 보기에 잘 안 보이지만, 양궁이 국궁에 미친 영향은 한 눈에 보기에도 딱 표가 납니다. 깍짓손 동작이 꼬리 없는 원숭이처럼 돼버린 것입니다.

만약에 어떤 사람이 전통 활쏘기를 배우러 활터에 올라갔습니다. 오늘날 유행하는 사법을 착실히 배워서 활에 빠져들었습니다. 전통 활쏘기를 한다는 자부심이 하늘을 찌를 것이고, 주변 사람들에게 자랑스레 말할 것입니다. 양궁 사법으로 변한 국궁 사법을 배우고서 이러고 떠들고 다닌다면 어떻게 될까요? 그가 배운 것이 과연 전통일까요?

오늘날 활터에서는 이런 질문을 해야 합니다. 활터에 올라가서 활을 배웠는데, 그게 당연히 우리의 전통 활쏘기가 아니고 뭐란 말이냐? 라고 묻는다면 이 분은 어리석기 짝이 없는 사람입니다. 오늘날 활터에서 배운 그 사법은 전통이 아닙니다. 양궁 사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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