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가

[충청매일] 올해 손자가 초등학교에 입학한다. 책상과 예쁜 가방을 사주고 문방구에 학용품을 사러갔다. 노트와 연필, 색연필, 물감, 크레파스, 지우개, 필통, 등을 사서 가방에 넣어 주었다. 좋아서 몇 번을 꺼내놓고 동생에게 자랑한다. 빨리 학교에 가고 싶다고 손가락을 꼽으며 기다린다. 들뜬 마음을 시샘이라도 하는지 ‘코로나19’로 입학식이 취소되고 급기야 등교조차 하질 못하는 사상 초유의 사태가 발생했다. 가방만 거실에서 뒹굴고 있다. 안타깝다.

내가 국민학교에 입학할 때 며칠 전부터 잠도 자질 못하고 기다렸던 기억이 떠올랐다. 예쁜 가방과 모자, 옷 검정운동화를 신고, 손수건을 접어서 가슴에 달고 온종일 자랑하느라 돌아다녔었다. 선생님은 어떤 분이실까? 친구는 몇 명이나 될까? 모든 게 궁금했었다.

이제 나는 다니던 직장생활을 마치고 새로이 농민학교에 입학했다. 초등학생이 아닌 농부학생이다. 모든 것들을 처음부터 다시 배워야 한다. 책과 공책을 대신해서 삽과 괭이를 사야하고 밭도 갈아야 한다. 문방구에서 사는 학용품 대신 농자재 마트에서 농기구를 사야만 한다. 나의 문방구는 이제는 농자재마트로 변했다.

경운기로 밭을 갈고, 관리기로 로터리를 친다. 공책에 글을 쓰다 틀리면 지우개로 지우면 되지만, 농부의 지우개는 관리기로 로터리를 치는 것이다. 지저분하던 밭이 깨끗해진다. 씨앗을 뿌리는 시기, 각종 모종을 심는 시기, 비료를 주는 양과 적절한 시기, 농약 살포 방법과, 풀 뽑아주기, 수확하는 시기, 등을 일일이 기록하고 때를 놓치는 일이 없도록 해야 한다. 추우면 비닐로 덮어주고 가물 때는 때맞춰 물을 주어야 한다. 학생이 학교에서 선생님께 배우듯 농부학생도 선배 농부 선생님께 항상 배워야 한다.

농부의 학교에서도 전 과목 수업이 이루어진다. 농작물과 대화하며 국어공부를 하고, 밭고랑을 세며 산수공부를 하고, 작물이 자라는 것을 바라보며 자연공부를 한다. 학교에서 그림을 그리듯 밭에서도 그림을 그린다. 크레파스나 물감으로 그리는 그림이 아닌 자연 그대로의 그림을 그린다. 밭에다 심고 가꾸며 자라는 과정을 지켜보며 생동감 넘치는 그림을 그린다. 음악 시간에는 새들과 함께하고, 체육 시간에는 열심히 삽과 괭이로 땅을 일군다.

어린 시절을 학교에서 보낸다. 자랄 때 사람다운 사람을 만들기 위해서다. 지식인으로 만들어 성인이 되었을 때, 각자의 역량을 발휘하여 사회에 이바지할 수 있도록 키워낸다. 서로 다른 분야에서 최고가 되도록 가르치는 곳이 학교다. 문방구에 진열되어 있는 수많은 학용품이지만, 쓰임새는 각자 다르듯, 다 같은 학생이지만 성격과, 소질과, 능력은 모두 다르다. 각자의 용도에 맞게 필요로 하는 곳에 배치되어 능력을 발휘하게 하면 될 것이다.

농부학교 문방구에도 수많은 농자재가 진열되어 있지만 용도는 각기 다르다. 밭을 가는데 사용되는 것, 심는데 사용되는 것, 성장을 도와주는 것, 생김새가 다르듯 사용되는 곳도 제각각이다. 도구를 바꿔 사용할 수 없듯이 개인의 소질도 바꿔 쓸 수는 없을 것이다. 지금의 나는 농사일을 배우는 학생이 제일 적합한 듯하다.

SNS 기사보내기
기사제보
저작권자 © 충청매일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