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방주
수필가

[충청매일] 여기서 팍팍한 다리를 두드리며 올라서면 서남암문이다. 암문 바로 옆에 치성이 또 한 군데 있다. 암문이라기에는 꽤 크다. 기어서 드나들어야 할 정도는 아니다. 높이 172cm 너비 166cm라고 한다. 몰래 드나드는 문이다. 암문의 구조는 그냥 열려 있는 것 같지만 내벽에 구멍이 있어 가로대를 끼울 수 있도록 되어 있고 암문 근처에 흙이나 다른 장해물을 장치할 수 있도록 조치를 했을 것이다. 안내판에 보면 여기서 것대산 봉수대까지 1.7km 라고 하니 옛날 장정걸음으로 30분이면 도착할 수 있을 것이다. 연락사항을 것대산 봉수대를 통하여 진천 봉화산으로 연락했을 것이다.

여기서 것대산 쪽으로 가면 낙가산을 거쳐 보살사로 하산할 수도 있고, 계속 산줄기를 타면 용암동 성당으로 내려 갈 수도 있다. 서남암문에서부터는 거의 평지나 다름없는 성길을 편안하게 걷는다. 와우산이 바로 아래고 와우산 동남쪽 기슭에 국립청주박물관이 보인다. 청주시의 남부지역과 북부지역 멀리 내수읍, 오창읍, 오송읍, 옥산까지 훤하게 터졌다. 와우산에서 산성으로 꿈틀거리며 오르는 산줄기가 마치 성벽처럼 보인다.

미호문으로 향한다. 미호문으로 가는 중에 수구를 몇 군데 발견했다. 여기서 바라보는 상당산성 서벽은 예술품처럼 아름답다. 본래 산의 형세에서 흙 한 삽도 허물지 않고 그대로 살려 축성했다. 용이 천천히 용틀임을 하는 것처럼 그렇게 아름답다. 그런 성벽 위에 공남문보다 작지만 아름다운 미호문이 있다. 이쯤에서 성벽 바로 아래에서 칡잎을 뜯어 먹고 있는 고라니 한 마리를 발견했다. 상당산성은 시민의 휴식처만이 아니라 자연이 와서 노는 곳이다.

미호문은 서문이다. 서문이란 말은 안 쓰는 것이 좋다. 본래 이름이 미호문이므로 그렇게 불러야 한다. ‘미호문( 弭虎門)’은 상당산 정상에서 보면 우백호에 해당되는 곳인데 산세가 호랑이가 뛰려고 움츠린 모습이기에 호랑이가 달아나면 상당산성의 기운이 쇠하여지므로 호랑이 목에 해당되는 부분에 문을 세워 제압한다는 의미이다.

미호문은 공남문보다 작지만 매우 아름답다. 문은 홍예문인 공남문과 달리 평문이다. 문의 천정도 화강암으로 마감해서 공격이 용이한 것은 아니다. 미호문에도 치성이 있다. 서남암문 근처에 있는 치성에 비해 규모는 작지만 분명한 치성이다. 그런데 왜 상당산성 치성이 3곳이라 했는지 모르겠다. 미호문 문루에서 가만히 서서 북으로 가는 성벽을 바라보면 언제 그랬는지는 모르지만 성벽이 안쪽으로 옮겨진 것을 발견할 수 있다. 또 문루에서 밖을 향하여 오른쪽으로 보면 문지가 있다. 미호문도 안쪽으로 옮긴 것이다. 본래의 미호문은 백화산 쪽으로 통하는 문이 아니라 주성동 마을 쪽으로 내려가는 계곡에 길이 있었던 것 같다. 문과 성을 옮겨 쌓은 것이 뚜렷하게 보인다. 미호문에도 축성의 책임자를 돌에 새겨 넣었다.

미호문에서 북쪽으로 걸어가면 본래 이곳에 있던 커다란 바위를 성벽처럼 이용한 부분이 있다. 거기서 조금 더 올라가면 15개의 포루(砲樓) 중의 하나인 포루지가 나온다. 포루지를 보면 이 성은 서쪽에서 오는 적을 막는 것을 목적으로 했던 것 같다. 수구지를 몇 개 더 지나면 성벽은 갑자기 꺾이어 남쪽을 향하게 된다. 여기는 내리막이다. 그렇다고 성벽이 흐지부지 되지는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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