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북연구원 연구위원

[충청매일] 올해는 필자 가족이 농촌, 정확히 시 외곽으로 이사 온 지 8년이 된다. 농촌 태생의 필자와는 달리 아이들은 물론 아내도 농촌 생활은 처음이었다. 아내가 이사하자고 할 때 반대한 이유도 이 처음이라는 것 때문이었다. 그렇게 무모하게 이사한 후유증은 첫날부터 나타나기 시작했다. 전에 살던 주인이 혼자 살았던 탓에 구석구석 신경을 쓰지 못했는지 온갖 벌레들의 사체가 널려 있었다. 아내와 딸들은 무서운 호랑이를 만난 듯 소리를 지르고, 심지어 울기도 했다. 아내와 딸들의 반응에 웃음이 나기도 했지만, 한편 한심한 생각도 들었다. 벌레 중에는 특히 돈벌레가 많았다. 사람에게는 아무런 해도 끼치지 않지만 생긴 모습이 영 정감이 없는 작은 벌레이다.

한번은 둘째 딸이 2층에서 소리를 지르며 울길래 놀라서 뛰어 올라갔더니, 침대 위에 돈벌레가 있다는 것이다. 순간 안심이 되면서도 화가 났다. 물거나 해를 주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모기, 파리, 개미들의 유충을 잡아먹는 이로운 벌레라고 아무리 얘기해도 여전히 무섭고 두렵게 느끼는 것이 이해되지 않았다. 그래서 필자는 큰 소리로 야단을 치고 말았고, 딸은 그 야단에 서러워서 더 울었다.

8년이 지난 지금은 딸들도 벌레에 익숙해져서 덜 놀라지만, 필자도 화를 내지는 않는다. 지금 생각하면 필자의 행동이 참 미숙했다. 딸의 놀란 마음은 알아주지 않고, 오로지 나의 기준으로만 판단했던 사건이었다. 벌레 때문에 놀란 딸의 마음은 아빠의 화난 태도로 더 상처를 받았던 것이다. 자녀들의 감정을 이해하지 못한 일이 어찌 벌레 사건뿐이었겠는가.

자녀를 양육하면서 가장 어렵고 서툰 것이 감정을 받아주는 것 같다. 자녀의 감정을 어른 기준으로 이성적으로만 생각하고, 수용해 주지 못하는 것이 대부분 부모들이 저지르는 실수이다. 뛰거나 장난을 치다 넘어져서 울고 있는 아들에게 “그러게 내가 뛰지 말라고 그랬지! 엄마 말 안 들으니 다치잖아! 어이구.. 너는 왜 이렇게 조심성이 없는 거야!”라는 말은 아주 흔한 부모들의 반응이다. 그런데 부모들이 이렇게 반응하면 아이들은 과연 어떤 마음이 들까? 부모 말처럼 잘못을 뉘우치고 다시는 장난을 치지 않게 될까? 부모가 자녀의 감정을 알아주지 못하는 일이 반복되면서 성장한다면 아이는 어떻게 될까?

아이에게 끼치는 영향은 가정마다, 자녀마다 다르겠지만, 한 가지 확실한 것은 그 자녀가 부모가 되었을 때 자기의 아이들에게 똑같이 한다는 것이다. 타인의 감정에 대한 나의 감정을 초감정이라고 하는데, 이 초감정을 어떻게 다룰 것인가는 매우 중요하다. 8년 전 둘째 딸 아이의 놀란 감정에 대한 필자의 초감정은 화였다. 그리고 그 초감정으로 인한 태도는 야단을 치는 것이었다. 필자의 타인의 감정에 대한 공감 능력이 부족했던 탓인데, 이 공감 능력은 대부분 어린시절 부모에게서 배운다고 한다. 필자가 어린시설 수용받지 못했던 공감이 딸에게까지 영향을 주었던 것이다.

어떤 사건이나 타인에 대한 최초의 감정은 본능의 것이며, 옳다 그르다 판단할 수는 없다. 그런데 이 감정에 대한 나의 감정, 즉 초감정은 훈련과 노력을 통해 바꿀 수 있다고 한다. 그러면 그로 인한 태도 또한 다르게 나타나게 된다. 어느 심리상담소 화장실에는 ‘너의 기분은 너의 태도가 되면 안 된다’라는 문구가 적혀 있다. 감정과 태도를 분리하는 연습이 더욱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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