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세영
건양대학교 군사경찰대 학장

[충청매일] 매년 4월 28일은 충무공 이순신장군의 탄신일이다. 충무공 이순신 장군의 나라 사랑에 대한 높은 뜻을 기리기 위하여 1973년에 국가 기념일로 정했다.

지금 같이 국가가 어려움에 처했을 때는 충무공 탄신일을 계기로 진정으로 나라를 사랑하는 길이 어떤 것인가에 대해 한번 쯤 생각해 보는 것은 매우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

이순신 장군은 54세에 세상을 떠나셨다. 요즘 100세 시대임을 감안하면 인생의 반 정도만 사시고 세상을 떠나신 셈이다. 그것도 11월 차디찬 바다에서 왜적이 쏜 총탄에 맞아 장렬하게 전사하셨다.

전투가 한창이다 보니 자신이 죽었다는 소식이 알려 질까봐 노심초사하시면서 병사들에게 자신의 죽음을 알리지 말도록 당부까지 하시고 쓸쓸하게 눈을 감으셨다. 당시의 모습을 떠올리면 왠지 마음이 저려온다.

이순신 장군은 평생을 나라를 위해 헌신하신분이다. 두 번이나 백의종군이라는 너무도 비참한 처벌을 받으면서도 누구를 원망하지 않았다. 장군은 어떠한 상황에서도 오직 나라만을 걱정하였다.

자신의 입신을 위해 옳지 않은 길은 바라보지도 걷지도 않으셨다. 그러기에 때로는 상관에게 오해와 미움도 받았다. 장군의 됨됨이에 감동을 받은 백성들이 순수한 마음으로 따르는 것도 반역을 위해 세력을 키우는 것으로 오해를 받아 왕으로부터 의심을 받기도 했다.

사실 장군의 왕에 대한 충성심은 그 누구도 따를 자가 없었다. 싸워 이기고자 하는 사내다움과 미래를 예측하고 상상을 초월한 창의력은 거북선이라는 놀라운 발명품을 탄생시켰다.

결국 23전 23승의 신화 같은 결과는 기적이 아니라 오직 나라만을 걱정하며 온 정성으로 준비하고 전투 현장에서는 목숨을 내걸고 싸운 결과이다.

이순신 장군이 살아 계실 때 남기신 여러 명언이 있는데 그 중에서도 ‘무릇 죽기를 각오하면 살고, 살려고 하면 죽을 것이다’라는 명언이 있다. 명량해전은 12척 대 133척의 맞대결이며 그 당시 조선 수군에게는 포, 화약 등 무기는 물론 군량까지 전투에 필요한 군수품조차 남아있지 않은 상태에서의 전투였다.

조정에서도 제대로 된 지원은 없었다. 오히려 해상전투를 포기하고 육지로 나아가 육상 방어에 함께하라는 지시가 있었다. 장병들은 두려움에 떨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그런 악조건에도 불구하고 전사에 길이 남을 대승을 거뒀다.

요즘 코로나19 사태로 의료진들이 사투를 벌이고 있다. 이들의 헌신은 이순신 장군 못지않다고 생각해 본다.

자신들의 위험은 아랑곳 하지 않고 오직 국민들의 안전과 국가를 위해 밤낮없이 사투를 벌이고 있기 때문이다. 탄신일 맞는 이순신 장군과 의료진 여러분들에게 진심어린 존경의 박수를 보낸다.

SNS 기사보내기
기사제보
저작권자 © 충청매일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