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가

[충청매일] 겨울이라 볼 수 없는 따뜻한 날씨가 지속되었었다. 입춘이 지나자 체면치레라도 하려는 듯 한파가 찾아왔다. 찬바람이 유리창을 스치고 지나가면 겨울 별미 붕어찜이 생각난다. 그래서 우리 몇몇은 초평저수지 인근에 있는 식당을 찾아갔다.

해가 저수지 뒷산 모퉁이를 돌아서기 직전 맛집에 도착했다. 미리 전화 예약을 하고 왔더니 도착하자마자 온몸이 짜릿해지는 냄새가 맨발로 뛰어나와 우리를 반겨 주었다. 방에 들어가 창밖의 저수지를 바라보니 물이 빨갛게 물들어 있었다. 잠시 후 밑반찬이 깔리고 시래기붕어찜이 올라왔는데 방금 바라다본 저수지 색깔과 같이 빨개서 침샘을 자극했다.

저수지 곳곳에 좌대가 떠있으나 겨울이라 낚시꾼들은 볼 수 없었다. 붕어는 겨울에 먹어야 맛있다고 식객들만 오고 간다. 붕어는 봄, 여름, 가을에 저수지 곳곳을 다니며 먹이 활동을 하다가, 겨울이면 곰처럼 동면을 한다. 이때가 붕어 먹기 딱 좋은 시기라고 한다.

날이 따뜻해지면 붕어의 하루가 시작된다. 넓은 저수지를 자유롭게 유영하며 힘차게 돌아다닌다. 이를 노리고 어부가 곳곳에 설치해놓은 그물들을, 나비가 거미줄을 간신히 피해 지나다니듯 피해 다닌다.

또 저수지 곳곳에 떠있는 좌대에서 낚시꾼들이 던져놓은 낚시 바늘을, 꿀벌이 사마귀를 잽싸게 피해 달아나듯, 요리조리 피하며 살아가고 있다.

수십 년을 그렇게 힘들게 살아온 붕어 들이다. 그들은 그들만의 생활 터전에서 자긍심을 갖고 살고 있다. 그러나 ‘원숭이도 나무에서 떨어진다’라는 말이 있다. 생각지 못한 장소에 쳐놓은 그물에 걸려 물 밖으로 나오게 된다. 그들은 식당 수족관으로 실려 간다. 곧바로 비늘이 벗겨지고 무, 시래기와 냄비 안에서 만나게 된다. 지글 지글 끓어나면 갖은 양념이 첨가되고 손님 상 식탁 위로 올린다. 이것이 그들의 생이다.

붕어는 물속에 있을 때 붕어다. 물 떠난 붕어는 음식에 불과하다. 붕어는 좌절하지 앉는다. 수조 생활을 마지막으로 물을 떠나 식재료로 탄생 한다. 찜, 매운탕으로 재탄생한다. 멋진 붕어의 삶을 그렇게 마무리한다. 어떻게 살았냐가 중요하지 않고, 어떻게 마무리 지었냐가 중요한 것이다.

사람은 죽어서 이름을 남기고 짐승은 죽어서 가죽을 남긴다. 나무는 죽으면 작품으로 탄생하고 붕어는 죽어서 맛을 남기고 사라진다. 사람의 인생 2막은 새로운 시작이고, 붕어의 2막은 맛깔스러운 음식으로 술과 함께 사라진다. 나 아닌 남을 위한 희생으로 사라진다. 

맛에 취하고 술에 취해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냄비 속 붕어요리를 즐겼다. 유리창이 깜깜해진 걸 보니 밤이 약간은 깊어졌나 보다. 마지막으로 밥을 비벼 먹고 나서야 마무리가 되었다. 상 위에 붕어 머리와 가시들만 지저분하게 널려있다. 맛있게 먹은 흔적이다. 이처럼 붕어의 삶의 방향성은, 정해져있는 시간을 살아가는 것이 아니고, 그저 사는 것이다. 그런 가운데 붕어는 최선을 다했을 것이다.

처음 도착했을 때 맨발로 마중 나왔던 냄새는 어디론가 사라지고 저수지에서 날아오는 비릿한 물 냄새만 어둠과 함께 다가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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