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진명
온깍지활쏘기학교 교두

[충청매일] 어떤 사람이 활쏘기를 학문으로 접근하려고 합니다. 그러자면 무슨 대학 무슨 과를 선택해야 할까요? 지금까지 이 글을 참하게 읽어온 분이라면 쉽게 대답할 수 없을 것입니다. 활쏘기가 체육인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네! 그렇다면 역사학? 민속학? 문화인류학? 사회학?

몇 년 전에 중요무형무화재 제47호 궁시장 김박영 궁장이 작고해서, 그 후임으로 국가무형문화재를 지정하기 위한 조사를 하느라고 전국을 돌아다닌 적이 있습니다. 그때 조사위원으로 참가한 사람은 모두 다섯이었는데, 두 분은 전공이 역사학이었고, 한 분은 민속학이었으며, 또 다른 한 분은 서울시무형문화재였습니다. 저도 거기에 끼었는데, 그 동안 활쏘기에 관한 책을 몇 권 냈다고 문화재청 직원이 추천하여 합류하게 되었습니다. 학문의 소속이 없는 것은 제가 유일했습니다. 저는 국어교육학 학사, 체육교육학 석사 소지자입니다.

제가 이런 복잡한 이력을 갖게 된 것은, 활을 쏜 이후에 벌어진 일입니다. 활쏘기는 우리나라의 학계에서 홀대받는 분야입니다. 체육이라는 게 적어도 국제대회가 있어야 상을 타면 연금이라도 받고 포상금이라도 받는데, 국궁은 국내 대회뿐이어서 그럴 일이 없습니다. 그러다보니 사람들의 관심 밖으로 밀려나서 전국에 1만 명가량의 순수 동호인들이 즐기는 종목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체육학 쪽에서도 별로 언급되지 않고, 달려들어 연구하는 사람도 별로 없으며, 다른 학계도 마찬가지입니다.

제 상식으로 가장 이상한 것은 민속학 쪽입니다. 활쏘기는 민속학의 가장 중요한 분야이자 영역인데도 이상하게 관심이 없습니다. 심지어 민속학계에서 가장 중요한 대학인 인하대와 안동대에 우리가 낸 ‘국궁논문집’을 기증서로 보내도 도서관에 등재조차 하지 않습니다. 서울대학교에서는 버려지는 국궁논문집을 그 학교 도서관 직원인 우리 회원이 발견하여 등록한 적도 있습니다.

그나마 다른 학문 분야에 비해 많은 관심을 보이는 곳이 체육학 쪽인데, 문제는 수준입니다. 학문의 가치는 사실성과 엄정성인데, 활에 관한 한 거의 모든 논문이 수박 겉핥기입니다. 읽다보면 이런 걸 학문이라고 해야 할지 회의감이 먼저 밀려옵니다. 활은 활터라는 현장에서 벌어지는 행위여서 사실성이 가장 중요한 조건이고 요인인데, 그런 게 거의 안 느껴지고 그냥 책상 앞에 앉아서 썼다는 느낌이 물씬 납니다. 특히 체육 문화사 쪽으로 나온 논문들을 보면 소설인지 판타지인지 구별이 안 가는 것들도 많습니다. 한때 저의 국궁 관련 지식이 체육학에 도움이 될까 하여 대학원을 체육전공으로 진학한 저의 선택이 부끄러울 때가 많습니다. ‘차라리 역사학이나 민속학 쪽으로 선택할 것을!’ 하고 말입니다.

츠쿠바 대학의 교수인 이찬우 접장한테 들으니, 일본에서는 ‘새로운 사실’이 없으면 어떤 학위논문도 통과되지 않는다고 합니다. 석 박사 학위논문에서 새로운 사실을 다룬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그래서 일본으로 유학 온 한국 학생들이 고생을 많이 한답니다. 학문 하는 분위기가 한국과 일본이 많이 다르기 때문이죠. 저는 그런 일본이 한없이 부럽기만 합니다.

SNS 기사보내기
기사제보
저작권자 © 충청매일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