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가

[충청매일] 지금은 황색등 같은 계절이다. 겨울도 아니고 봄도 아닌 노란 불이다. 이때가 되면 주변에서 부고가 날아든다. 계절이 바뀌는 시기이기 때문이다. 졸업식을 마치면 입학식을 하듯, 겨울이 빠지는 자리에 봄이 들어선다. 마치 아기의 젖니가 빠져 문고리 매달린 실에 묶여있고, 영구치가 솟아나듯 봄이 솟아난다. 그때서야 계절이 바뀌었음을 알게 된다.

계절은 가슴으로 느낀다. 이별의 아픔을 경험했던 가슴에 새로운 만남을 불어넣어야 바뀐다. 시린 가슴에 따스함이 찾아들 때 바로 그때다. 계절의 특징을 느낄만하면 어느새 바뀌어 있다. 사랑이 떠나가듯 떠나가고 또 다른 사랑이 스며들듯 소리 없이 찾아든다. 느낌을 알 수 없게 지나쳐버린다. 그러다 보니 더운 여름과 추운 겨울은 길게 느끼며 살고 있는 듯하다.

분명 봄과 가을이 뚜렷이 존재한다. 온 산과 들을 꽃으로 물들이고 앙상했던 가지마다 잎이 피고 열매가 달린다. 그런 것들을 느낄 틈도 없이 더위가 찾아오기 때문에 봄이 사라져 간다고 말들 한다.

산과 들이 아름답게 물든다. 나뭇가지마다 커다란 열매들이 주렁주렁 매달려 있다. 그런데 왜 이 좋은 계절은 쉽게 지나가는가. 오랜 기다림이 무색하리만치 잠시 여운을 남기고 사라진다. 봄은 피고 가을은 지는 계절이기 때문일까?

삶에도 계절이 있다. 세상에 태어나 자라며 꽃피우는 봄 같은 유년기. 성장하여 왕성한 활동을 보이는 짙푸른 여름 같은 장년기. 모든 세상살이를 통달하고 수확하여 인생2막을 시작하는 노년기. 온갖 고초를 이겨내고 삶을 정리하며 다음 생을 계획하는 겨울 같은 말년기가 있다. 그중 길게만 느껴졌던 여름에 비해 길어야할 가을은 짧게만 흐르는 듯하다.

계절이나 삶이나 봄과 가을을 오래 느끼지 못하고 지나간다. 잊고 지내다 문득 생각나면 어느새 변해있다. 그렇게 느낌 없이 흘러 얼마의 시간이 지나고서야 내가 어디까지 와 있는지를 깨닫게 된다.

내 인생의 봄과 여름은 이미 지나갔다. 지금의 나는 가을에 도착하여 인생 최고의 화려함을 느끼며 이곳저곳을 여행하며 즐기고 있다. 잊혀져가는 기억 속에서 사라져가는 계절을 아쉬워하지 않고 현재의 계절에 만족하며 살고 있다. 지난 다음 후회하는 일 없게끔 하루하루를 짜임새 있게 보내고 있다. 그런데 하루하루가 빠르게 지나간다. 길게 살아야 할 가을 인생이 생각보다 쉽게 흘러간다. 조급함 때문일 게다.

봄을 느끼면 여름이다. 가을이구나 하며 즐기다보면 어느새 찬바람이 몰아친다. 내 인생의 봄날은 갔다. 길었던 여름도 지나갔다. 다시 찾아오지 않는다. 이제 가을에 도달해있다. 이 가을을 길게 가져가야 한다. 곧바로 찬바람이 가슴으로 파고드는 일이 없도록 막아야 하겠다. 잊혀져가는 가을이 아닌 오랫동안 지속되는 가을을 만들어야겠다. 오는 듯 지나가는 가을 인생이 아닌 세월이 익어가고 그런 과정 속에서 거두어들이며 채워나가는 가을 인생을 만들어 보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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