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전 번역가

[충청매일] 진시황제가 죽자 진나라는 곧바로 혼란에 휩싸였다. 최초의 천하통일 위업이 겨우 16년 만에 어이없이 붕괴되었다. 그 뒤를 이어 유방이 항우와의 싸움에서 이겨 천하를 재통일하였다. 이때 유방 휘하에 활약한 명장이 있었는데 그가 바로 대장군 한신(韓信)이다. 한신의 병법과 전략은 유방이 어려울 때마다 결정적인 승리를 안겨다주어 한(漢)나라 통일에 큰 기여를 하였다.

대장군 한신의 젊은 시절은 참으로 불행했고 비참했다. 가난한 집안에 태어나 배우지도 못했고 성품 또한 바르지 못했다. 천성이 게을러 장사라도 해서 먹고 살 생각은 않고 늘 남에게 빌붙어 지냈다. 한때는 친척인 마을 이장 집에서 여러 달 신세를 지기도 하였다. 그러나 이장이 집을 비울 때면 그 아내가 쌀이 떨어졌다고 하여 한신에게 밥조차 주지 않았다. 결국 한신은 이장의 집을 나오고 말았다. 하지만 게으른 천성을 바꾸지 않고 동네 연못가에 나와 낚시나 하면서 소일하였다.

어느 날 빨래터의 여인이 한신이 늘 굶주리는 걸 보고 불쌍히 여겨 밥을 여러 차례 준 적이 있었다. 그때 한신이 너무도 감격하여 여인에게 이렇게 말했다.

“내 나중에 이 은혜를 반드시 크게 갚겠소이다!”

그러자 여인이 너무도 어이가 없어 힐책하였다.

“스스로 밥 한 끼도 먹지 못하면서 내게 무슨 보답을 해줄 수 있다는 말인가? 주둥이나 놀려댈 능력이 있다면 얻어먹지 말고 당장 거리에 나가 밥을 구걸하시오!”

한신의 수치는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하루는 저자거리를 지나다가 그곳 깡패인 백정과 시비가 붙었다. 백정이 빈정거리며 말했다.

“뭘 쳐다봐! 네놈이 젊고 키가 크다고 해서 날 이길 것 같아? 만약 네놈이 용기가 있다면 갖고 있는 그 칼로 날 찔러라. 그렇지 않고 용기가 없다면 네 가랑이 속을 기어가라. 그러면 시비를 그만두겠다.”

그러자 한신이 그만 들고 있던 칼을 내려놓고 고개를 숙여 백정의 가랑이 밑으로 기어들어갔다. 그 모습을 본 거리의 모든 사람들이 한신을 향해 크게 웃었다. 이후로 한신은 겁쟁이의 대명사가 되어 아이들에게까지 놀림의 대상이 되었다.

하지만 이후 한신은 유방을 만나 출세가도를 달렸다. 나중에는 제나라 왕에까지 올라 이전에 신세진 여인에게 금은보화를 하사하여 부자로 만들어 주고, 자신에게 굴욕을 준 백정은 군대의 장교로 발탁하였다. 한신은 결코 이전에 일을 수치로 여기지 않았고 보답할 일이라 여겼기 때문이다. 이는 사마천의 ‘사기(史記)’에 있는 이야기이다.

견모불욕(見侮不辱)이란 업신여김을 당하더라도 이를 치욕스럽게 여기지 않는다는 뜻이다. 뜻하지 않은 일로 손해를 보거나 치욕을 느끼면 누구나 대부분 화가 나기 마련이다. 그런 순간에 화가 나면 도무지 자신을 절제하기 어려워진다. 그렇다고 성질 그대로 부아를 쏟아낸다면 그 다음은 후회가 찾아오기 마련이다. 결국 어떤 일을 당했을 때 다음을 생각해봐야 한다. 그것이 화를 줄이고 자신을 구하는 일이다. 하루아침이면 사라질 화를 참지 못하면 항상 더 큰 불행이 찾아오는 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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