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진명
온깍지활쏘기학교 교두

[충청매일] 오늘날의 활터는 어떨까요? 활터에 올라가면 지금까지 알아본 대로 조선 후기부터 지금까지 면면히 우리 전통 문화를 이끌어온 한량이나 그들의 후예를 만나볼 수 있을까요? 이런 기대감을 갖고 활터에 올라갔다가는 이내 실망하고 맙니다.

요즘의 활터는 우리의 전통문화를 간직하고 이어가는 곳이 아닙니다. 사격장 같은 공간입니다. 즉 양궁과 다를 바가 별로 없습니다. 이렇게 된 것은 불과 20년 상간의 일입니다. 2000년 무렵을 전후로 해서 이렇게 활터가 변했습니다.

물론 전국의 모든 활터가 몽땅 변한 것은 아닙니다. 현재 그런 방향으로 변화가 이루어지고 있는데, 그 속도가 몰라보게 빨라서 하는 소리입니다. 이 속도라면 한 세대가 가기도 전에 활터는 양궁과 똑같은 모습으로 변할 것입니다. 우리에게 양궁이 무엇인지를 물어보면 앞으로 20년 후 활터의 미래를 내다볼 수 있습니다.

양궁은 스포츠입니다. 어떤 옷을 입고 활을 쏘든, 어떤 장비로 활을 쏘든, 목적은 단 하나 화살이 과녁의 한 복판 10점짜리에 맞으면 환호하고 상을 받는 그런 운동입니다.

거기에 건강이나 다른 문화는 없습니다. 협회에서 규약을 정하고 그렇게 시행하면 순식간에 그것을 선수들이 따라야 합니다. 양궁 하는 사람들이 걱정할 거라고는, 국제대회에서 얼마나 잘 맞힐 수 있느냐 하는 것입니다. 활터의 머잖은 미래도 바로 이런 모습입니다.

이렇게 된 데는 1970년대 이후의 사회 변화가 있습니다. 1970년대 중반에 각궁과 죽시를 대체할 수 있는 개량궁과 카본살이 나타났고(양궁의 재질로 국궁처럼 만든 것), 활을 배우는 주기가 짧아져서 전통 문화가 후배들에게 잘 전달되지 않는 결과를 낳았습니다. 활터문화는 우리 사회의 상류층이 주도한 것이어서 그 품격을 배우는 데는 오랜 시간이 걸렸습니다. 교장(敎長) 밑에서 접장들의 지도로 10여년을 배워야 겨우 신사(新射)를 면하던 시절에서 6개월이면 다 배우는 초고속 시대로 접어들었습니다.

게다가 국궁협회에서는 지방자치시대가 개막된 1980년대 들어 갑자기 늘어난 전국대회 날짜 조정을 매개로 전국의 활터에 대한 권력을 갖게 되었고, 승단 대회로 회원에 대한 지배력을 높여 시수 중심의 분위기를 만들어갔습니다. 즉 과녁만 잘 맞히면 장땡인 시대가 된 것입니다.

이렇게 되기 전의 1970년대까지 한량은 획창 소리에 맞춰 춤도 출 줄 알아야 했고, 소리도 한 가락쯤 알아야 했습니다. 한량들에게 과녁 맞히는 일은, 그런 일의 다음 순번이었습니다.

지금의 활터는 이런 여유가 모두 사라지고, 오직 과녁 하나 맞히려는 광풍이 몰아칩니다.(‘활쏘기 왜 하는가’) 극히 최근의 일이고, 빠른 변화에 놀라서, 이에 대한 문제제기라도 할까 하여, 결국 이런 잡문을 쓰는 중입니다. 저는 국궁이 양궁이 되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활터에서 활을 쏘는 사람은 ‘궁사’가 아니라 ‘활량’이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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