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전 번역가

[충청매일] 정(鄭)나라는 대륙 중원에 위치한 주나라의 제후국이다. 주나라 왕실의 보호를 받고 왕실의 일을 돕는 것이 나라의 주된 임무였다. 하지만 세월이 흘러 주나라가 약해지자 정나라는 주변 강대국들의 잦은 침략을 받게 되었다. 이때 자산(子産)이라는 명재상이 나타나 정나라를 위기에서 구했다. 오늘은 자산에 관한 일화를 하나 소개하고자 한다.

기원전 529년, 정나라 간공이 죽자 장례를 치르게 되었다. 이때 자산은 재상의 직위에 있어 장례위원장이었다. 군주의 장례이다 보니 그 대열이 웅장하고 대단했다. 하지만 대열이 지나려면 좁은 길을 넓혀야만 했다. 이에 인부들을 동원하여 길을 닦게 하였다. 그런데 길 한가운데 유씨 가문의 사당이 자리하고 있어 인부들이 잠시 작업을 멈췄다. 그때 유씨 집안의 유길이라는 자가 서둘러 나와 혹시라도 사당이 허물어질까 두려워 꾀를 내었다. 작업하는 인부들에게 좋은 대접을 해주며 신신당부하였다.

“자산 어른이 오셔서 왜 아직 사당을 허물지 않았느냐고 물으면 이렇게 대답하시오. 차마 사당을 허물 수가 없었습니다. 하지만 명하신 일이니 곧 허물도록 하겠습니다.”

자산이 길이 잘 닦였는가 보기 위해 시찰을 나왔다. 그런데 유씨 사당이 길을 막고 있었다. 자산이 인부들에게 물었다.

“어찌하여 사당을 허물지 않는 것이냐?”

그러자 인부들이 유길이 가르쳐 준대로 대답했다. 자산이 그 말을 듣더니 한 번 곰곰이 생각하고는 인부들에게 말했다.

“조상을 소중히 모시는 자가 있으니 사당을 피해서 길을 내도록 하라.”

인부들이 길을 새로 내는데 이번에는 어느 하급관리의 집을 허물어야 할 상황이었다. 만일 그 집을 허물면 아침이면 작업이 끝나고, 허물지 않고 돌아가 길을 내면 점심나절이나 되어야 작업을 마칠 수 있었다. 작업 책임자가 자산에게 아뢰었다.

“여러 나라에서 오신 귀빈들이 장례를 위해 기다린다고 합니다. 하오니 서둘러 일을 마치려면 집을 허물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러자 자산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말했다.

“그럴 필요가 없네. 장례에 참석하기 위해 그 먼 나라에서도 왔는데 겨우 한나절을 못 기다리겠는가? 귀빈들에게 피해가 되지 않고 우리 백성들에게도 피해가 없다면 허물지 말고 돌아서 길을 내도록 하라.”

결국 점심나절이 되어서야 간공의 장례를 마쳤다. 이는 ‘춘추좌씨전’에 있는 이야기이다. 소심소고(素心溯考)란 어떤 문제에 부딪혔을 때 소박한 마음으로 돌아가 깊이 생각하여 답을 찾는다는 뜻이다. 소박한 마음이란 예를 아는 것이다. 남에게 손해를 주면서 자신의 목적을 이루는 것은 예가 아니다. 요즘처럼 코로나 역병이 기승을 부리는 때에는 마스크를 착용하는 것이 예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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