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은혜 청주시립도서관 사서]엊그제 내린 눈이 무색하게도 돌 담 사이로 노란 민들레 한 송이가 고개를 내밀고 있다.

봄이 오는가 싶어 반갑기도 해, 보고 있으니 문득 시 한 편이 떠오른다.

‘천둥 번개 지나간 곡우 아침 / 때아닌 우박과 꽃잎 사이

들숨과 날숨 / 부딪쳐 살아오르며

낯선 우박이 자기를 녹여 꽃잎을 깨우네

낯선 꽃잎이 자기를 찢어 우박을 맞네

잘못 든 길을 알아차리고도 / 설레설레 봄꽃은 번지네’

우리고장 출신 시인인 이안의 시집’목마른 우물의 날들’에 실린 ‘숨길1’의 전문이다. 곡우 아침에 때 아닌 천둥 번개와 함께 우박이 떨어졌을 때 봄꽃들은 얼마나 놀랬을까.

하지만 시인은 낯선 우박의 등장에도 자기를 찢는 고통을 견뎌내며 설레설레 봄꽃은 번진다고 자연의 순리와 함께 봄의 생명력을 노래하고 있다.

중국에서 시작된 ‘코로나19’로 세계가 떠들썩하다. 마스크 착용은 당연하고 사람이 많이 모이는 곳을 피하며 각종 모임이 취소되는 등 바이러스로 인한 전염병에 대한 두려움이 만연해 있는 요즘이다. 국민들의 생활반경도 집과 직장으로 좁아지게 되고 따라서 경제도 주춤하면서 어려움을 호소하는 일터와 사람들이 많아지고 있다. 4월 총선과 함께 더 심각해진 양분화 속에 정계도 어수선하다. 머리가 복잡하고 마음이 혼란스러울 때, 쫓기듯 반복되는 일상에서 우리가 탈출할 곳은 어디일까. ‘원초적 고향’인 자연이다.

이안의 시 속에는 이런 자연이 있다. 풀 꽃 곤충 동물, 저수지 바다, 마당이 있고 밭이 있다. 기계화 되고 인공지능 기술이 발달하는 요즘 같은 세상은 자칫 삶이 무미건조하게 느껴질 수도 있다. 그러다보니 많은 사람들이 자연 속에서 위로를 얻고 치유받기도 한다. 그의 시 ‘몸길’에는 주변 산이나 들에 나가면 흔히 볼 수 있는 자연 속 많은 소재들이 등장한다. 바랭이 쇠비름 명아주 강아지풀 박주가리 환삼덩굴 털진득찰 도꼬마리 개망초 여뀌 칡넝쿨 등 처음 들어보는 이름들도 있지만 주변의 산과 들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친숙한 풀들이다. 고추가 자라는 비알밭의 잡초라면 당연히 베어버리고 뽑아버려야 할 일이지만 시인은 그러지 않는다. 빼곡한 잡초들 속에서 듬성듬성 고추가 자라는 밭이 그의 밭이다. 시인은 양 낫 한 자루 들고 드문드문 인적의 징검돌을 놓아가며 몸 길을 낸다. 함께 사는 세상, 자연과 소통하며 풀 한포기의 생명도 소중히 여기는 시인의 순수와 깊은 속이 느껴진다.

그의 시 중 빼놓은 수 없는 또 하나의 소재는 가족이다. 시인은 여러 편의 시를 통해 떼려야 뗄 수 없는 우리의 둥지인 가족을 이야기한다. 시 ‘낮 동안’ ‘복숭아 먹는 저녁’에서는 경제적 어려움 가운데서도 ‘어느 하나라도 쓰러져선 되지 않는 하나’로 아내와 아기 그리고 자신을 끈끈히 묶는다. 시 ‘유년의 마당’과 ‘열무 밭’ ‘장마’ 등 다수의 시에서는 어려운 시골 살이 가운데서도 자신을 있게 한 원 둥지인 어머니와 아버지가 등장한다.

나는 시인도 아니고 더욱이 시를 이해할 수 있는 삶의 연륜도 부족하지만 왠지 그의 시를 보면 자연 속으로 들어온 느낌이 든다. 우리가 있어야 할 곳으로 들어온 것 같다. ‘코로나19’가 하루빨리 종식되고 순리대로 봄꽃이 설레설레 번지는 봄을 기다리며 이안 시인의 시집 ‘목마른 우물의 날들’을 만나보길 권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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