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국장

[충청매일] 만 5세 이하 어린이 4명을 동서남북 네 방향에 앉혀놓고 서로 다른 세 가지 산의 모형을 보여주고 자신과 반대 쪽 어린이가 바라본 산의 모양을 고르도록 하면, 대부분 자신의 위치에서 바라본 산의 모양을 답으로 내놓는다고 한다. 이들은 자신의 위치에서만 사물을 이해할 뿐, 타인의 관점에서 추론하는 인지 능력을 갖추기 못했기 때문이다.

미국 프린스턴대 프렌티스(R. Prentice) 교수 역시 자신의 생각과 다른 사람들의 생각이 같을 것이라는 심각한 인지적 오류를 자기중심적 사고 또는 자기 위주 편향이라고 정의했다. 이러한 자기 위주 편향은 사회적 지위가 높고 권한이 커질수록 더 고착화되는 경향을 띤다. 미국의 심리학자 엘킨드(D. Elkind)도 사람들이 자신의 주장이나 생각에 대해 다른 많은 사람들이 찬성하거나 지지하고 있다는 인지적 착각을 한다고 밝혔다.

이를 ‘상상(想像) 속의 청중(聽衆)’이라 정의한다. 위에 열거한 심리학적 사례들을 보면서 왜 가장 먼저 총선에 나선 정치인들이 연상될까.

이번 총선에 나선 예비후보들 가운데 상대 정당은 물론 같은 정당내 다른 경쟁자들에 비해 자신이 부족하거나 모자라다고 ‘솔직한 고백’을 하는 사람들을 볼 수 없는 연유다. 철저히 자기중심적 사고와 이기적 편향이란 관점에서 자신을 주관적으로만 평가하고, 정치라는 권력에 함몰돼 타인의 시선이나 관점엔 동의하지 않는다. 상상 속 청중을 마치 자신의 거대한 지지층인 양 착각하거나, 자신에 대한 비판과 비난은 배척하거나 불신한다. 자신이 충분히 인지하면서 의도적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편향적 자기확신에서 비롯된다는 점에서 이들의 심리적 오류와 정신적 편향은 과히 질병이라고 해도 무방하다.

총선 후보 공천을 위한 당내 경선에서부터도 이러한 자기 위주 편향의 주장과 시각은 명확히 드러난다. “내가 왜 공천을 받지 못하느냐”거나 “경선하면 분명 내가 이길 것이다”라며 ‘상상 속 청중’을 동원해 자신의 지지를 착각하는 후보들이 넘쳐난다. 너무 우려먹어 맛조차 느낄 수 없는 ‘국민의 뜻’을 앞세워 거대 정당들은 정권 심판론과 야당 심판론으로 맞서고, 또 나머지 군소정당들도 대다수 유권자들이 잘 이해하지도 못하는 준연동형비례대표제 도입에 편승해 무려 60㎝에 달한다는 투표용지를 만들어냈다.

누구를 위함인가. 그들이 지지기반으로 내세우는 국민의 시선과 관점은 도대체 어디에 있는가.

자신이 정치적 신념과 동의로 선택한 소속 정당의 공천 과정에서부터 ‘나를 선택하지 않으면 뛰쳐나가 훼방놓을 것’이라고 겁박하면서 자신이 그토록 주창하던 정치적 신념 따윈 안중에도 없는 정치인들의 시선과 관점은 과연 누구를 위함인가. 많은 국민의 비판과 분노를 일으킨 사회적 사태에 대해 자기중심적 편향만 앞세워 국민의 시선이 잘못됐다는 현실인식의 심각한 오류에 빠진 정치인들은 또 누구를 위해 이번 총선에 나서는가.

유권자들은 어쩔 수 없는 구조적 선택의 문제로 특정 정당이나 후보를 지지하는 것뿐이지, 그들의 자기중심적 주장처럼 ‘국민의 뜻’으로 뭉쳐 지지하는 것이 아님을 직시해야 한다. 국민은 그들처럼 엄청난 권력이나 부를 원하지 않는다. 그저 별다른 걱정없이 식구들과 함께, 이웃들과 함께 편안히 먹고사는 게 희망이다.

그들이 볼 땐 미천하고 소박한 서민들의 꿈일지언정, 국민에겐 결코 녹록지 않은 절대적 가치다. 그 희망을 조금이나마 이뤄줄 후보를 선택할 뿐, 그들이 거창하게 내세우는 정치적 신념은 물론 특정집단이나 특정인들을 위한 지지를 표하는 것이 아니다.

진정 국민을 위한 정치를 하고자 한다면 자신의 관점이 아닌, 국민의 관점에서 이해하고 고민하고 판단하길 권고한다.

SNS 기사보내기
기사제보
저작권자 © 충청매일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