염우
(사)풀꿈환경재단 상임이사

[충청매일]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사태로 침울하고 긴장감이 돌던 분위기를 ‘기생충’이 전환시켜 주었다. 지난 10일 ‘미국 아카데미 시상식 2020’에서 봉준호 감독의 영화 ‘기생충’이 작품상, 각본상, 감독상, 국제장편영화상 등 4개 부문을 석권했기 때문이다. 아카데미 시상식 92년 역사상 비영어권 영화가 작품상을 받은 것이 처음이라니 의미가 더욱 특별하다. 한국 뿐 아니라 세계 영화사를 새로 썼다는 등의 찬사가 쏟아졌다. 지난해 5월 칸 영화제 황금종려상을 시작으로 수많은 영화제와 시상식에서 무려 167개 상을 휩쓸었다.

영화 ‘기생충’은 양극화된 사회, 공생이 불가능할 것 같은 세 가족의 만남과 갈등이 빚어내는 이야기다. 전원 백수인 기택의 가족이 사는 반지하 단칸방, 피자박스를 접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또 다른 무대는 언덕 위의 저택, 젊은 글로벌 기업가인 박 사장의 가족이 사는 곳이다. 기택의 아들이 우연히 박 사장네 딸의 과외선생으로 취업하게 된다. 이어 기택의 딸은 미술치료사로, 자신은 운전기사로, 부인은 가정부로 하나 하나 저택 안으로 일자리를 확장해 나간다. 위조와 편법을 동원하긴 했지만 각각 자신의 일을 하고 돈을 벌게 된다. 마치 반지하의 삶을 벗어던질 수 있을 것처럼…. 박 사장 가족이 캠핑을 떠난 틈, 기택의 가족은 자신들의 저택인 듯 흐드러지게 술파티를 펼친다. 이때 쫓겨난 전직 가정부가 돌아왔고 지하에 자신의 남편을 숨겨두고 있음을 고백하게 된다. 얹혀사는 생활의 기득권을 두고 경쟁해야 하는 상황, 생존 다툼이 펼쳐진다. 폭우로 인해 박 사장 가족은 캠핑을 중단하고 돌아왔다. 도망쳐 나온 기택의 가족은 반지하 집이 홍수로 잠겨버려 수재민 신세를 져야했다. 다음날 박 사장 아이의 생일파티가 열렸는데, 몇 사람이 목숨을 잃게 되는 사건들이 일파만파 전개되고 난 뒤 기택은 흔적 없이 사라졌다. 저택의 숨겨진 지하 공간으로 침잠한 것이다. 반 지하에서 지하로…. 자생할 수도 없고 공생할 수도 없으니 기생할 수 밖에 없는 상황으로 내몰린 셈이다.

하지만 기생을 조금 다른 관점에서 살펴보고자 한다. 기생은 ‘남에 의지해 생활하는 것’을 말한다.기생충 전문가 서민 교수는 ‘바이러스는 인간을 위험에 빠트리고 죽이기도 하지만, 기생충은 숙주를 죽이지 않고 괴롭히지도 않는다.’고 강조한다. 숙주가 배탈이 나 굶으면 기생충도 따라 굶게 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지구 환경에 자리 잡고 살아가는 인류의 모습은 어떠한가?

봉준호 감독이 만든 또 하나의 화제작인 ‘설국열차’를 살펴보자. 기상이변으로 꽁꽁 얼어붙은 지구, 살아남은 사람들을 태운 기차가 끊임없이 궤도를 달린다. 맨 뒤쪽 꼬리칸은 빈민굴 노예 같은 생활의 연속이다. 앞쪽칸은 풍요롭고 호화로운 귀족 생활을 누린다. 맨 앞의 엔진칸은 신격화된 공간이다. 제한된 자원과 환경을 핑계로 차별을 정당화한다. 차별을 깨트리기 위해 뒤쪽 사람들은 한 칸 한 칸 진격을 한다. 각성한 민중들의 혁명과 같다. 하지만 마지막 칸의 쟁탈 과정에서 기차는 전복되고 만다. 공멸이라 여기던 순간 어느덧 스스로 회복하고 있는 자연환경으로 인해 희망이 생긴다. 기생충은 자신의 숙주를 함부로 해하지 않지만 사람은 자신들의 삶의 터전을 제대로 돌보지 않는다.

415ppm을 넘어선 이산화탄소, 꺼지지 않는 산불과 빙하의 급격한 감소, 미세먼지와 플라스틱쓰레기들은 모두 지구환경이 보내는 긴급시그널이다. 사람 간의 공생에 우선하는 것이 자연과의 상생이다. 그냥, 기생충만 같아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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