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전 번역가

[충청매일] 한(漢)나라 경제(景帝) 무렵, 이광(李廣) 장군은 집안 대대로 궁술을 익혀 활쏘기의 명수였다. 군에 입대하여 궁술과 기마술로 흉노를 무찌른 공로가 헤아릴 수 없이 많았다. 이에 사람들은 이광을 천하에 둘도 없는 장군이라 여겼다.

한번은 흉노가 변경을 대거 쳐들어왔다. 이광이 즉시 군대를 통솔하여 나아갔다. 이때 조정에서 환관 중귀인(中貴人)이 감독을 나왔다. 그런데 중귀인이 기병 수십 명을 거느리고 말을 달리다가 뜻밖에 흉노 병사 세 명을 만나 싸우게 되었다. 흉노 병사들이 몸을 돌려 활을 쏘자 중귀인은 상처를 입고 수행했던 기병들은 모두 몰살당했다. 중귀인이 겨우 도망쳐 이광에게 상황을 알렸다. 이에 이광이 말했다.

“흉노 세 놈이 우리 기병 수십 명을 이겨내다니, 그놈들은 틀림없이 독수리를 쏘아 잡는 사냥꾼일 겁니다.”

하고는 이광이 곧바로 기병 1백 명을 거느리고 그 흉노 병사를 쫓아갔다. 마침 그들이 말을 잃어버려 걷고 있었기에 몇 십리도 못가서 발견하였다. 이광이 부하들에게 좌우로 넓게 포진하라고 명령하고, 친히 활을 쏘아 둘은 죽이고 하나는 사로잡았다. 생포한 자의 말을 들어보니 그들은 과연 흉노의 독수리 사냥꾼이었다.

그런데 이광이 말에 오르자 멀리서 흉노 기병 수천 명이 둘러 있는 것이었다. 이광의 기병들이 크게 놀라 급히 도망가려 했다. 그러자 이광이 엄하게 말렸다.

“멈춰라! 지금 우리들은 본진에서 수십 리 떨어져 있다. 만약 우리가 도망친다면 흉노의 추격에 전부 몰살당할 것이다. 하지만 우리가 유유자적하게 머물고 있으면 흉노는 우리를 유인부대인 줄 알고 감히 공격해오지 못할 것이다.”

하고는 기병들에게 명령을 내렸다.

“모두 말에서 내려 안장을 풀어라!”

그러자 기병 중 하나가 의아해하며 물었다.

“장군! 적들이 가까이 있는데 어떻게 하시려고 안장을 풀라 하십니까?”

이광이 대답했다.

“저놈들은 우리가 달아나면 유인부대가 아니라고 여겨 쫓아올 것이다. 그러나 우리가 안장을 풀면 유인부대인 줄 알고 감히 덤비려 하지 않을 것이다.”

과연 안장을 풀자 흉노 병사들이 공격해오지 않았다. 해가 저물 무렵, 백마를 탄 흉노 장수 하나가 앞에서 오고가며 순시하고 있었다. 이광이 기병 열 명과 함께 그 장수의 빈틈을 노리고 있었다. 그러더니 한 순간 말에 올라 쏜살같이 내달려 흉노 장수의 목을 베어 되돌아왔다. 아주 눈 깜짝할 사이였다.

한밤중이 되자 흉노들은 혹시라도 부근에 매복해있는 한나라 병사들이 공격해 올까 두려워 멀리 철수해 버렸다. 날이 밝자 이광은 비로소 본진이 있는 곳으로 되돌아왔다. 이는 사마천의 '사기열전(史記列傳)'에 있는 이야기이다.

지피지기(知彼知己)면 백전불태(百戰不殆)란 적을 알고 나를 알면 백번 싸워도 위태롭지 않다는 뜻이다. 적을 모르고 나만 알면 한번 승리하고 한번 패한다. 적도 모르고 나도 모르면 싸울 때마다 반드시 패한다. 인생에서 싸움도 이와 다르지 않다.

 

SNS 기사보내기
기사제보
저작권자 © 충청매일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