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

[충청매일] 얼마 전부터 나는 우연한 기회에 모 기관에서 운영하는 한글교실의 강사로 자원봉사를 하게 되었다. ‘잘 할 수 있을까’하는 걱정 때문에 망설이기도 했지만 오랫동안 교단에서 국어를 가르쳐왔기에 용기를 내어 학습자들 앞에 서기로 하였다. 수업이 시작되는 날 나는 수업 시작 시간보다 30분 정도 일찍 교실에 도착하였다. 좀 일찍 도착해서 학습자들을 기다리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에서였다. 그런데 나의 예상은 빗나가고 말았다. 학습자들은 나보다 오히려 훨씬 먼저 교실에서 선생님을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다.

학습자들은 예상대로 연세가 많으신 어르신들이 대부분이었다. 머리가 허옇게 쇠신 연로한 모습의 학습자들! 그런데도 그 분들의 눈은 초등학교 1학년 어린 학생들의 눈처럼 초롱초롱했다. 그분들은 그런 눈으로 나를 바라보고 계셨다. 오랫동안 교단에 서긴 했지만 이 같은 상황은 처음 겪는지라 내심 당황스럽기도 했지만 곧바로 평정심을 찾아 학습자분들이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탐색하기에 이르렀다. 학습자 중에는 아직 한글의 기본 자음과 모음을 다 익히지 못하신 분도 계셨고, 어느 정도 읽을 수는 있어도 맞춤법이 많이 틀리거나 의미에 맞지 않는 문장을 쓰시는 분들이 많았다. 나는 한 분 한 분 수준에 맞는 수업을 전개해 나가야겠다고 마음먹고 우선 학습자 모두에게 해당되는 우리말 자음과 모음의 필순부터 교정해 나가기로 했다. ‘기역, 니은, 디귿, 리을...’ 자음과 모음을 한 글자 한 글자 칠판에 써가며 학습자들의 모습을 바라보았다. 연세도 잊은 채 학습에 몰두하는 모습에 나는 학습자들이 실로 존경스러웠다. ‘어느 수업시간의 학습자가 이보다 열정적일 수 있을까?’, ‘배움이란 얼마나 소중한 것인가?’ 등의 생각이 나의 뇌리를 스치고 지나갔다.

쉬는 시간에 어느 어르신이 말씀하셨다. ‘손주가 동화책을 읽어달라고 할 때가 제일 힘들고 고통스러웠다.’고 그래서 그 어르신의 목표는 동화책을 읽는 것이었다. 또 다른 학습자는 일기를 쓰고 싶다고 하셨다. 한 번도 마음속에 품은 생각을 명확히 표현해 본 적이 없기에 생각을 글로 옮기고 싶다고 하셨다. 나는 학습자 한 분 한 분의 목표가 바로 가르치는 사람의 목표가 되기도 한다고 생각하기에 이르렀다. ‘일기와 편지를 쓸 수 있게 하고, 손주에게 동화책을 읽어줄 수 있는 정겨운 어르신이 되시게 해보자’ 그런 생각을 하면서 나는 수업을 전개해 나갔다. 수업하는 동안 나는 내내 행복했다.

  다음 수업 시간이었다. 학습자들은 과제를 해오셨다고 자랑스럽게 공책을 펼치셨다. 나는 가게 이름을 5가지 정도 써오시라고 과제를 제시했었다. 대부분의 학습자들은 가게의 간판을 보며 열심히 써오셨다. 물론 잘못 보시고 틀리게 써오신 분도 계셨지만 그렇게 틀린 부분을 교정해 가는 것 역시 수업의 중요한 일환이기에 나는 학습자들과 하나하나 대화를 나누며 교정하는 일을 하였다. 그런데 학습자 중 몇 분이 일기처럼 문장을 꾸며 오신 거였다. ‘병원에 갔었다,’ 또는 ‘아들이 와서 미역국을 끓여 주었다.’ 등의 짧은 문장이었다. 물론 그 짧은 문장에도 잘못된 부분이 여러 군데 발견되긴 했지만 학습자들은 자신의 생각을 글로 옮기려는 시도를 하시고 계셨다. 나는 가르치는 사람으로서 기쁨을 감추지 못했다.

그렇게 나의 한글교실에서의 봉사활동은 진행되었다. 나는 꿈꾼다. 한글교실의 어르신들이 일기도 편지도 자유롭게 쓰시고 동화책도 자유롭게 읽으실 날이 꼭 오리라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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