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북연구원 연구위원

[충청매일] 며칠 전 1년여 만에 만난 지인들 가족 모임이 있었다. 40대 후반에 늦둥이 셋째를 얻은 지인의 집에서 함께 저녁식사를 했다. 오랜만에 보는, 아직 돌도 지나지 않은 어린 아기는 관심을 독차지 했다. 함께 간 자녀들까지 17명이나 되는 대규모 모임이었다. 평수가 넓은 아파트인데도 비좁게 느껴졌다. 이 모임은 올해로 16년이 돼간다. 고등학교 2학년이 되는 첫째들이 산후조리원에서 만난 것이 계기가 돼 만들어진 모임이다. 그러다보니 둘째들도 나이가 비슷하다.

첫째 아이들은 자그마한 갓난아기부터 지금까지 삶의 과정을 함께했다. 아이들만 성장한 것이 아니라 부모들도 함께 자랐다. 산후조리원이 시작이 돼 서로의 지인들이 연결이 돼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이제는 끝났을 줄 알았던 아기 울음소리가 올해 다시 울리게 되었고, 옛 추억을 되살리는 계기가 되었다.

16년 동안 아이들은 같은 듯 다르게 성장해 왔다. 초창기에는 서로 정보를 교환하면서 옷을 사 입히고, 학원도 보냈다. 아이들 성적과 학교생활도 같이 고민하고 서로 상담을 해 주었다. 공감대가 많고 함께 한다는 것은 힘이 되고 위로가 된다. 아이들을 키우는 것은 물론 남편과 아내로서 초보자였던 부모들은 많은 시행착오를 함께했다. 시댁과의 관계, 남편의 술과 일중독, 때론 여자 문제, 자녀와의 갈등문제, 학교폭력 등을 울고 웃으면서 함께했다. 어쩌다 한 번 만나는 친 형제들 보다 더 깊은 속 이야기를 나눴다. 어른들이 얘기하던 ‘옆집 숟가락이 몇 개 인지도 아는’ 그런 사이가 되었다.

얼마 전 아내와 두 딸과 함께 관람했던 ‘82년생 김지영’ 영화를 봤는데, 여러 가지 감정이 느껴졌다. 가장 우선적으로 아내에게 미안했다. 영화에서 지영의 남편 대현은 필자의 경험을 기준으로 했을 때 남편으로서의 역할을 아주 잘 하고 있었다. 시댁의 상황도 필자나 지인들의 상황에 비하면 아주 무난한 측에 속한다. 영화를 보면서 필자가 아내에게 들었던 마음은 영화 속의 상황보다 훨씬 힘들고, 더 무심한 남편을 잘 견뎌준 것에 대한 고마움과 미안함 이었다. 그럼에도 영화 속 지영의 상황에 마음이 아팠던 것은 지영에게서 외로움이 느껴졌기 때문인 것 같다. 지영은 성장과정에서 남동생에게 밀렸고, 직장에서는 여성으로서 힘든 경쟁을 했으며, 전업 주부로서 아이의 육아를 도맡아야 하며, 시댁에서도 편하게 쉬지 못하는 복잡하면서도 처음 겪는, 그리고 기분 좋지 않은 상황들을 오롯이 혼자 감당하고 있었다. 지영과 그 상황에 대해 안쓰럽고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다.

필자가 16년 동안 이어온 산후조리원 모임에서는 영화보다 더 심하고 어려운 상황이 있었지만 함께하는 동지들이 있었다. 산후조리원 모임의 아내들은 힘들 때면 서로 시댁, 남편, 그리고 자식들 흉이라도 보면서 외로움을 달랠 수 있었던 것 같다.

최근 슈가맨이라는 TV프로그램으로 다시 소환된 잊혀졌던 가수 양준일씨가 어떤 인터뷰에서 했던 말이 가슴에 와 닿았다. ‘아무도 기억하지 못할 것 같았던 자신을 다시 찾아주고 소개해 주어서 너무 감사하고 큰 힘이 되었다’는 말에서 짙은 외로움이 느껴졌다. 다시 귀국을 계획하고 있는 그에게서 힘과 생동감이 느껴졌다. 힘들고 어려운 상황을 완전하게 풀기는 불가능하지만 힘이 될 수 있도록 함께 하는 것은 어렵지 않다. 연말에는 가족과 지인들과 ‘함께’하면서 서로에게 힘이 돼 주는 것은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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