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가

[충청매일] 부산에서 결혼식이 있어 서둘러 준비했다. 막 출발 하려는데 벽에 걸려있는 할아버지 사진이 눈에 들어왔다. 오늘따라 유독 주름이 많아 보였다. 주름은 큰 산 깊은 계곡같아 보였다. 할아버지 얼굴이 큰 산으로 나타났다. 출발 시간에 늦을까봐 서둘러서  관광버스에 올라탔다.

버스는 정시에 출발했고 곧 고속도로에 진입했다. 아직은 이른 시간이라 한산했다. 다들 아침을 거르고 왔는지 나눠준 떡과 음료를 먹으며 이야기꽃을 피웠다. 따끈한 커피향이 차안을 향기롭게 맴돌았다. 장거리를 가야하기에 휴게실도 들르고 쉬엄쉬엄 달려갔지만 그래도 지루했다. 잠깐 졸기도 하고 차창을 내다보기도 하면서 무료함을 달랬다.

안개가 자욱하다 시간이 지나자 햇살이 비추었다. 먼 산을 바라볼 수 있어 답답함이 가셨다. 산은 뒤로 물러나며 각기 다른 모습을 안겨준다. 산마다 골진 모습이 얼굴의 주름살처럼 보였다. 흡사 주름살 많은 할아버지의 모습이다. 그 주변의 나무들은 얼굴을 덮고 있는 더부룩한 수염 같았다.

터널을 지나간다. 옛 산에는 터널이 없이 평범한 산이었다. 그러나 지금의 산들은 철도와 고속도로를 건설하며 터널을 뚫어 기차와 자동차가 산속을 통과한다. 사람의 코와 입 같다. 옛날 산에는 바위가 머리에 버짐을 앓아 부분적으로 벗겨진 흉터처럼  보였었다. 지금의 산은 얼굴의 형태를 고루 갖추고 있다. 쉴 새 없이 드나드는 열차와 자동차들이 마치 누런 코를 스르르 흘러내리다 훅 빨아들이는 콧물을 연상케 했다.

산은 그냥 산이다. 그러나 요즘의 산들은 변하고 있다. 점점 사람의 모습을 닮아가고 있다. 눈, 코, 입을 갖추고 얼굴에 주름살을 늘려나가고 있다. 산도 사람처럼 나이가 들어가고 있음을 나타낸다. 수염도 점점 자라 덥수룩하다. 액자 속 갓을 쓰고 있는 할아버지의 모습이다.

얼굴에는 땀방울이 주름살을 타고 흐르고, 산에는 물방울이 계곡을 타고 흐른다. 아침 이슬로 세수하고 새들이 날아와 양치해주고 계절에 따라 화장하고 옷도 갈아입는다. 겨울이면 하얀 솜이불을 덮고 따뜻하게 잠잔다.

세월이 변화를 갈구함에 따라, 산은 그에 부응하기 위해 태도를 바꿔 조금씩 변하고 있다. 할아버지께서는 일제 강점기와 6.25사변을 겪는 등 엄청난 격동의 세월을 이겨내셨다. 그러면서도 산이 표정 변화가 없듯 어려운 시기를 힘든 기색 없이 극복해 내셨다. 얼굴의 깊게 파인 주름살이 이를 대변 해주고 있는 듯하다.

내가 산이라면 변화 없는 생활에 지겨움을 느낄 것이다. 정해진 수명대로 살더라도 매일매일 변화를 갖고 살아가는 내 인생이 낫다고 생각한다.

돌아오는 차안에서 차창을 통해 먼 산의 주름살을 바라보고 있는데 갑자기 차 유리창에 내 얼굴이 비춰진다. 차창에 비춰진 내 얼굴에도 먼 산의 주름처럼 깊은 주름살이 나타난다. 나도 세월 앞에서는 별 수 없이 산으로 변해가고 있나보다.

집에 돌아와서 벽에 걸린 할아버지 사진을 바라보니 큰 산으로 나타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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