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국장

[충청매일] 요즘 국정이나 지방자치 행정에서 거버넌스(governance)란 말이 유행처럼 번지고 있다.주요 갈등 현안의 경우 유일한 해법처럼 활용된다.

그렇다면 거버넌스에 참여하는 구성원들은 거버넌스의 개념이나 원리 등에 대해 제대로 인지하고 있는지부터 살펴볼 일이다.

거버넌스의 사전적 개념은 명료하지 않다. 사실은 국제경제 분야에서 먼저 등장한 말이지만, 행정 집행 과정에서 이해 당사자들의 참여 중요성이 강조되면서 민간부문과 시민사회를 포함한 다양한 구성원들의 의견을 반영하는 행정 과정으로 보편화돼 있다.

최근 청주시가 장기미집행 도시계획시설 난개발을 막기 위한 방안으로 청주시, 청주시의회, 사회단체, 관련 전문가 등으로 민관거버넌스를 구성, 3개월 동안 운영했다.

청주시는 거버넌스 운영 결과, 다양한 구성원들의 토론과 협의를 통해 합리적인 결론을 도출했다고 자평한다. 연인원 928명이 참여해 회의시간만 190시간에 달한다는 게 자평의 논리적 근거다.

과연 청주시의 말처럼 거버넌스가 성공적으로 운영됐다고 볼 수 있을까.

거버넌스에 참여한 위원들은 대체적으로 “모두가 만족하지는 못하지만, 비교적 소통과 절충을 통해 합리적인 결론을 이끌어낸 것이 성과”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정작 주요 이해당사자인 토지주나 사업자 등은 배제된 채 소위 전문가나 사회단체 관계자들만 참여시켜 구색만 맞춘 행정적 상징물에 불과하다는 지적이 팽배하다. 거버넌스가 합리적인 대안을 도출했다고 주장하지만, 정작 이해 당사자들 사이에선 반발이 터져나오고 있는 것이 이를 방증한다.

홍골민간공원개발대책위원회는 “토지주나 주민에게 별다른 설명도 없이 특례사업을 추진한다”며 “이는 주민의 재산권과 생존권을 침해하는 것”이라고 조직적 대응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매봉공원지키기주민대책위원회도 “원주민들의 희생을 강요하고 아파트 입주민에게만 편의를 제공하는 특혜”라며 행정심판 청구 등 반발 수위를 높이고 있다.

청주시의 말대로 합리적인 대안이라면 이러한 반발이 왜 증폭되는지 이해하기 어렵다.이는 거버넌스가 실질적인 합의를 이끌어내기보단 참여행정의 치적으로 활용된 측면이 크기 때문이다.

우선 거버넌스의 대표성 결여다. 거버넌스에 참여한 구성원들이 과연 이해당사자와 주민의 대표성을 가졌다고 볼 수 있는가. 특히 직접적 이해당사자로 장기간 재산권 침해로 고통받아온 토지주들을 배제함으로써, 이들의 반발과 저항을 야기한 것이나 다름없다. 행정의 공개성이나 합법성, 책임성, 효율성, 형평성 등 거버넌스가 갖춰야 할 다양한 기능과 원칙을 간과한 것도 한 요인이다.

민주적 참여행정의 수단이라고 하면서도 정작 내부 토론이나 합의 도출 과정에 대해선 비공개에 치중했고, 거버넌스의 합의안이 법적 구속력을 갖는 합법적 사안이 아닌 만큼 예상되는 반발과 저항에 대한 더욱 신중하고 치밀한 접근도 필요했다.

궁극적인 행정의 책임은 청주시에 귀속된 만큼 의사결정 과정에 주도성을 가져야 했으며, 다른 개발 현안과 형평성에 대해서도 많은 연구가 이뤄지지 않았다는 점도 아쉬운 대목이다.

결론적으로 “거버넌스의 명확한 개념은 잘 모른다”거나, “거버넌스 합의안이 이행되지 않을 경우 책임은 없다”는 일부 거버넌스 구성원들의 무지하고 무책임한 행태만 봐도 이번 거버넌스 운영이 행정적 상징에 불과한, ‘무용(無用)의 행정’임을 반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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