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안에는 우물이 있고 근세에 들와와 민가를 신축할 때 여기에서 돌화살촉과 돌창, 돌칼 등의 유물이 출토됐다고 한다. 또 석기 토기와 그 후의 자기도 나왔다고 하는 것으로 보아 기록에 나온 대로 후삼국시대가 아니라 우리가 알지 못하는 아주 오랜 역사가 이 토성에 감추어져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1984년 충북대 차용걸 교수가 학계에 보고한 이래, 1996∼1997년간 서쪽 성벽 일부와 서문지에 대한 발굴조사를 실시한 결과, 성벽을 구축할 때 안팎으로 나무기둥을 세우고 널빤지로 가로막은 다음 내부에 흙을 넣어 층층이 다지는 방법으로 축성한 것으로 밝혀졌다. 이른바 판축기법이다. 그런데 다른 토성의 일반적인 기법인 기단은 보이지 않았다고 한다. 토성 축성 연대를 추정하기 위해 서문지에서 나온 숯을 가지고 연대 추정을 해보니 서기 130년경이라고 한다. 9세기나 10세기의 후삼국 시대에 축성된 것이 아니라 삼한시대로 거슬러 올라가야 할 것 같다. 그렇다면 천안 지방에 자리 잡았던 마한의 중심세력인 목지국目支國의 한 세력이 이곳에 있었다고 볼 수도 있다고 한다.

정북토성은 들판 한가운데 있는 토성이라는 것이 특이한 점이다. 들판 한가운데 왜 토성을 쌓았을까? 견훤이 이곳에 곡식을 저장했다고 하는 설도 있다. 곡창지대에서 생산된 곡식이나 세곡을 저장했을 수도 있고 인근의 산성에 군량미를 공급하는 물류기지가 되었을 수도 있다. 특히 상당산성이 보민을 위한 산성이었다면 피난한 백성들의 식량기지가 됐을 수도 있다. 북으로 낭비성, 동으로 상당산성, 서쪽으로 멀리 부모산성, 바로 가까이 목령산성 등에 필요한 양식이나 다른 물자들이 이곳에 보관 되었을 수도 있다. 이런 이야기는 식견이 짧아 단순한 내 생각일 수도 있다. 이미 학자들이 조사 보고한 내용을 따로 공부한 것도 별로 없이 생각해본 내용이다. 

청주시에서는 정북동 토성의 정비 계획을 세우고 정비를 계속하고 있다. 삼국시대 초기의 의식주 등 다양한 생활상을 엿볼 수 있는 공원과 전통 화초원을 조성할 계획이다. 마한 시대 소도지역의 대표적 상징물인 솟대를 배치, 당시의 민간신앙 생활도 보여준다. 이와 함께 초기 철기문화 시대의 제철· 제련시설을 재현하고, 돌무덤과 덧널무덤으로 대표되는 당시의 묘제를 부장품과 함께 소개할 계획이라고 한다. 또 당시 사용된 칼, 창, 공성 도구 등 전쟁 무기를 배치하고 솟대 깎기, 성 쌓기, 전쟁무기 만들어보기 등을 할 수 있는 역사 체험장을 운영한다. 억새밭과 조롱박 터널, 야외 광장도 만들어 고성古城의 정취를 살리기로 계획하고 있다. 이렇게 되면 원 삼국시대 원형이 그대로 간직된 정북동 토성은 살아 숨 쉬는 역사 체험 공간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사실 몇해 전부터 이런 계획을 세우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지만 별로 진척된 것은 아직 없는 것 같다.

또한 상당산성, 부모산성, 와우산토성과 연계해 중요한 관광자원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원형을 훼손하지 않는 범위에서 시민들에게 문화유산의 중요성을 알리고 역사에 대한 교양을 갖추게 하는 것도 매우 중요한 행정이라고 생각한다. 진척된 것은 없지만 자치단체에서 많은 예산을 들여 이곳을 역사 체험공간으로 조성한다니 반가운 일이다. 이곳이 중요한 관광지 또는 문화 학습지가 될 날이 빨리 왔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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