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북연구원 연구위원

[충청매일]동네라는 말의 어원 중에는 동내(洞內)라는 한자어에서 기원했다는 주장이 있다. 이때 동(洞)은 물(水)을 함께(同) 사용한다는 의미이다. 그러니까 동네는 나와 같은 물(주로 우물)을 마시는 사람들이 모여 사는 작은 공간이었다. 지금의 행정구역 체계인 동·리에도 여러 개의 동네가 있다. 지금도 필자의 고향에서는 무슨 리(里) 보다는 ‘중말’, ‘새천이’, ‘토끼실’ 등의 동네 이름을 더 많이 사용한다. 예전에는 사람이 모여 사는 곳곳마다 같은 물을 마시면서 살았던 것이다.

그런데 이제는 개인 집은 물론 마을의 공동 우물도 자취를 감추었다. 내가 어떤 물을 마시고 있는지 모르는 사람이 대부분이다. 지금은 십리, 백리는 더 떨어진 마을에서도 같은 물을 마신다. 모두 같은 동네인 것이다. 충주시에 사는 사람이나 음성군, 진천군, 증평군, 안성시, 이천시에 사는 사람이나 같은 물을 사용한다. 그리고 그 물은 충주댐에서 방류하는 물이다. 충주댐계통의 광역상수도는 충북뿐만 아니라 경기도 이천시, 안성시까지 공급한다. 같은 동네가 아닌 동내(洞內)가 된 것이다.

산업발달과 인구밀집, 그리고 도시성장은 이 광역상수도의 덕을 보았다. 대전광역시, 청주시, 세종시가 성장하고 많은 사람들이 몰려 살 수 있는 것은, 그 지역 곳곳에 마실 수 있는 물이 있어서가 아니라 대청댐이라는 엄청나게 큰 우물과 이를 지역까지 배송할 수 있는 상수도 기술 덕분이다. 댐은 하류지역에서 그 물을 사용하는 도시, 산업단지, 그리고 주민들에게는 생명의 젓줄인 셈이다.

우리나라 중부권에는 충주댐과 대청댐이라는 거대한 우물이 두 개 있다. 소양강댐 다음으로 2, 3번째로 큰 댐들이다. 충주댐이 보유하고 있는 물은 수도권에 공급하는 상수도의 약 500일 이상의 물량에 해당될 만큼 엄청나다. 그런데, 최근 충주댐 물을 공급받는 지역에서 물 부족 사태가 발생하고 있다. 댐의 물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댐에서 물을 사용하는 도시나 산업단지까지 공급하는 광역상수도 시설의 용량이 부족한 탓이다. 멀리까지 공급해야 하니 정수시설이나 관로시설을 늘리는데 많은 시간과 비용이 들기 때문에, 급격하게 늘어나는 수요를 그때그때 충족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광역상수도 시설을 건설할 당시에 예상했던 것 보다 더 많은 인구, 더 많은 산업단지가 건설되었다. 수요를 정확하게 예측하지 못한 탓도 있겠지만, 상수도 공급의 한계를 무시한 개발 탓도 있다.

물 부족 사태의 문제를 더 키우는 요인도 있다. 충주댐계통의 광역상수도를 공급하는 10년 이상의 장기계획(수도정비기본계획)은 중앙정부에 주관하는데, 이 계획을 수립하는 과정에서 실제 그 물을 사용하는 동네사람들의 의견과 수요의 반영이 충분하지 않다. 국가 기반시설로써 광역상수도 계획은 중앙정부가 주도하여 수립하는 것은 타당하다. 그러나 댐 건설로 많은 피해를 감수하고 있고, 실제로 그 물을 마시고 사용하는 동네사람들의 의견이 제대로 반영되지 않는다는 것은 전혀 타당하지 않다.

동네에 큰 우물은 있지만, 마음껏 사용하지 못하는 꼴이다. 물을 낭비해서는 안 되지만, 우리 동네 우물 사용에 대한 결정권을 전적으로 타인이 쥐고 있는 것도 모순이다. ‘돈을 물 쓰듯 한다’는 격언은 더 이상 어울리지 않는 말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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