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국장

[충청매일] 분열과 갈등으로 혼돈에 빠진 요즘 사회를 보고 있노라면 차범석 작가의 ‘산불’이란 희곡이 오버랩(overlap)된다. 공산당에 의해 아들을 잃은 한 어머니와, 국군에 의한 사위의 죽음을 겪은 다른 한 어머니의 이념적 갈등은 과부가 된 그들의 며느리와 딸의 대립으로 이어진다. 이들은 우연히 나타난 한 남자를 둘러싸고 질투와 시기, 원초적 욕망까지 드러내며 치열하게 투쟁하지만 끝내 서로 소유하지 못한 채 죽음이란 허망을 맞게 된다.

요즘 세태에 이입해보면, 진영간 갈등으로 접점을 찾지 못한 채 갈수록 심화되고 있는 극한적 사회 대립과 갈등의 귀결이 투영되는 듯하다.

우리 사회에 잠재돼 있던 보수와 진보 진영간 반목은 조국 법무부장관 사태를 둘러싸고 첨예하게 표면화되고 있다. 어쩌면 이번 사태로 인해 확장된 것이 아닌, 양측 모두 이러한 사태가 일어나 세력 대결의 빌미로 삼아 우위에 서길 바라고 있었는지도 모를 일이다. 이들의 원초적 욕망은 사회 주도권과 권력 쟁취라는 것을 부인할 수 없을 터.

더욱이 자신들의 이러한 독선적 야욕과 오만을 합리화하고 지지를 얻기 위해 ‘민심’과 ‘정의’를 앞세우는 행태는 애처롭기까지 하다. 이들이 주장하는 민심은 ‘확증편향’일뿐이며, 그들이 내세우는 정의는 ‘선택적 정의’에 불과하다. 민심의 줄기는 하나임에도 이들이 믿는 민심은 서로 다를 뿐만 아니라, 정의에 대한 접근방식이나 인식의 차이도 극명한 것이 이를 방증한다.

국가와 국민을 지켜야 할 정치권은 정치권대로, 시민사회는 시민사회대로, 언론은 언론대로 돌이킬 수 없는 갈등과 대립만 부추겨 돌아설 수 없는 사회적 분란의 절벽으로 내몰고 있다. 그들의 목적은 명백하다. 오로지 사회적 권력투쟁에서 이기기 위함이다. 민심을 부르짖지만, 국민의 고통과 혼란은 안중에도 없다. 민심 따윈 욕망의 수단일 뿐.

정치는 본디 사회적 갈등과 대립을 조율해 사회통합과 국가발전을 실현하는 일일진대, 여야를 막론하고 그들의 정치는 ‘세종로 1번지’ 입성과 ‘금배지’를 한 번 더 다는 것만이 맹목적인 투쟁 의지다. 정치와 행정을 시민의 힘으로 감시·견제하겠다는 사명적 모태는 훼손된 채 기득권에 도취된 사회단체들의 행태도 성향적 주도권만 바뀌었을 뿐, 예나 지금이나 별반 다르지 않다.

이러한 정치권과 시민사회의 반목과 대립으로 인해 파생되고 있는 우리 사회의 심각한 후유증은 어떻게 해소하고 치유할 것인가. 이미 벌어질대로 벌어진 국론 분열의 간극을 메우기 위해선 엄청난 사회적 노력과 시간이 필요하다. 그에 수반되는 고통과 혼란은 오롯이 국민들의 몫으로 전가된다. 이는 누구의 책임이며, 누가 앞장서 해결할 일인지 정치권과 시민사회에 묻고 싶다.

허욕의 투쟁에서 누가 이긴들, 양분된 사회 갈등은 유효할 수밖에 없다. 이념과 사상의 대립으로 불거진 원초적 투쟁의 끝은 쟁취와 결실이 아닌 허망한 죽음이라는 ‘산불’의 메시지는, 보수나 진보라는 진영논리를 떠나 모두가 통렬하게 받아들여야 할 시대적 교훈이다.

‘욕심이 잉태한 즉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한 즉 사망을 낳는다’는 종교적 일갈도 이와 궤를 같이 한다는 점에서, 자신들의 욕심과 오만을 내려놓고 국민 앞에 통합하지 않는다면 끝내 처절한 ‘정치적·사회적 주검’이 될 수밖에 없다는 점을 직시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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