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북연구원 연구위원

[충청매일] 며칠 전 지인이 아들의 문제 때문에 집으로 찾아왔다. 고 1학년 아들이 학교에서 여학생들과의 문제로 통학이 불가능한 멀리 떨어진 학교로 전학 조치를 당했다. 자퇴를 한 후에 내년에 재입학 하려고 해도 받아주지 않는다고 한다. 자퇴를 하려면 전학 간 학교에서 하라는 이야기를 듣고 지인은 아들보다 더 큰 상처를 받아서 괴로워했다. 필자는 아이의 학교문제 보다 부모와 자녀 사이에 얽혀있는 문제가 더 시급하고 중요한 것 같았다. 그래서 우선 부모와 아이와의 문제를 좀 더 들여다보고 직면해보자고 제안했고, 지인도 그렇게 하기로 했다.

자녀를 키우다 보면 매일 매일이 전쟁이고 갈등이다. 학교뿐만 아니라 집에서도 늘 문제를 일으키고 다니는 청소년 자녀를 보면 ‘나는 안 그랬는데’, ‘나는 더 어려운 환경에서도 잘 이겨냈는데’라는 말이 자연스럽게 나오게 된다. 중2병이 이제는 초5병으로 내려왔다고도 한다. 아무리 타이르고 혼을 내도 변하지 않는 자녀들 때문에 갈등을 겪는 부모들의 어려움은 어쩔 수 없는 통과의례인 것일까? 자녀나 동료들과 갈등 없이 관계를 맺을 수 있는 방법은 없는 것일까?

필자는 갈등이란 관계를 맺는 과정에서 생기는 필연적이고도 희망의 부산물이라고 생각한다. 개인, 가정, 공동체, 직장, 사회집단 등 타인과 관계를 맺는 과정에서 몇 번의 갈등과정은 반드시 거치게 되고, 또 그래야만 한다. 갈등을 겪지 않는 방법은 오직 한 가지인데, 그것은 관계를 하지 않는 것이다. 필연적임에도 갈등을 못 견뎌하고, 가능한 피하려고만 한다. 왜 그런 것일까?

갈등(葛藤). 칡(葛)과 등나무(藤)가 서로 얽히고설켜서 풀기 어려운 상대를 말한다. 갈등이 힘든 것은 자기 쪽으로만 당겨서 풀려고 하기 때문이다. 그래도 지인처럼 갈등 때문에 힘들어하고 고통 받는 것은 그나마 희망이 있는 상태이다. 갈등을 풀고 싶고, 관계를 잘 하고 싶기 때문에 자꾸만 내 쪽으로 잡아당기는 것이고, 그래서 서로 더 부딪히고 힘들어 하는 것이다.

금방이라도 이혼할 것 같이 미워하고 상대를 탓하던 부부들도 사실은 관계를 잘 맺고 싶은 마음이 밑바닥에 깔려있다. 그런데 그 진짜 마음을 본인조차 모르는 경우가 의외로 많다. 본인도 모르는데 상대방이야 어찌 알겠는가? 이 사실을 서로 알게 해 주고, 진짜 마음을 나누는 과정을 거치고 나면 얼음장 같던 관계도 언제 그랬냐는 듯이 풀어진다.

직장에서의 갈등은 조금 더 복잡하고 어렵다. 갈등관계에 있는 당사자의 진짜 마음을 알기 어렵고, 양 쪽을 다 들어주고 풀어주는 중재역할이 없기 때문이다. 가정이든 직장이든 갈등을 풀기 위해서는 양 쪽의 이야기를 반드시 들어야 하는데, 직장에서는 그것이 잘 안 된다.

그 이유 중에 가장 큰 것은 갈등을 직면하고 표면화 하는 것에 대한 두려움과 불안 때문이다. 갈등 상황에 맞닥뜨렸을 때에 어떻게 해야 하는지 익숙하지도 않다. 조용히 넘어 가는 것이 어쩔 수 없는 최선의 방법이라고 여겨지고, 이 과정이 반복되다 보니 갈등의 골은 깊어지고, 관계가 개선되지 않는다.

갈등관계에는 아직 희망이 있다. 갈등을 해결하고 싶은 진짜 마음과 잡아당겨서라도 풀려는 힘이 있기 때문이다. 그 희망마저 놓아버리고, 아무 것도 하지 않으려고 포기할 때 진짜 문제가 시작된다. 대신 희망을 놓지 않는 한 언젠가는 풀 수 있는 것이 갈등이기도 하다.

SNS 기사보내기
기사제보
저작권자 © 충청매일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